<25>존 멜런캠프의 ‘Wild Night’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드럼이 비트를 제시하면 개구쟁이 같은 베이스가 궁둥이 춤을 추기 시작합니다. 멜런캠프가 까칠한 목소리로 노래를 하는데, 기타는 1절이 다 끝날 즈음에서야 한참 뒤늦게 대통령의 사과처럼 들어오죠. 지각한 기타는 방귀 뀐 놈처럼, 꼬마가 발을 콩콩 구르면서 생떼를 쓰는 것처럼 징징거립니다.
이 노래의 백미는 노래가 한 절씩 끝날 때마다 반주를 딱 멈추는 것입니다. “즐겁게 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춰라!” 하는 것처럼 말이죠. 그렇게 숨죽이고 있다가 동시에 장난스러운 리듬을 재개하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집니다. 음악은 연주자들이 이런 단순한 약속을 정확하게 잘 지키는 것만으로도 큰 기쁨을 줍니다. 긴장의 고조와 기대의 충족을 동시에 주는 것이죠.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은 대부분 처음부터 그 약속을 지킬 의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연구 결과에 의하면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약속을 할 때부터 거짓말을 하는 뇌파를 보입니다.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이득을 얻기 위해 상대방을 속이려고 약속을 했던 것이죠. 뭐 해주면 공부하겠다는 청소년이나 곧 집에 간다는 남편을 떠올리면 됩니다.
인간은 늘 좋은 사람으로, 윤리적인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지키지 못할 약속을,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자신의 능력을 착각하며 하죠. 그리고 후회하며 자기 합리화와 남 탓을 합니다. 자신에게 지나치게 높은 기대를 한다고, 아니 강요를 한다고 말이죠.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두 번째 이유입니다. 약속은 아무도 모르게 자기 자신에게만 할 때 지킬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세 번째로는 약속을 지켜도 대단한 득이 없기 때문입니다. 상황은 늘 달라지고, 인생에 대단한 득은 없습니다. 상대방을 잃어도 크게 손해가 될 것 없다고 판단할 때 약속은 즉각 파기되죠.
참고로, 논란이 많지만 우리나라 다수의 성인은 여전히 청소년기의 윤리 수준으로 살다 죽고, 따라서 대한민국은 많은 연구 결과에 의하면 윤리 수준이 가장 낮은 국가 중의 하나입니다. 유교적 전통이 서양의 윤리와 다르기 때문에 저평가되었다는 반론이 있죠. 그런데 제 경험으론 제가 알고 있는 유교적 윤리를 우리나라에서 접한 지는 무척 오래되었고, 청소년기의 특징인 자기 합리화와 억울함의 포효는 매우 자주 접합니다. 아마 제가 잘못 배웠고, 나쁜 것만 선택적으로 보는 것 같습니다.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