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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독자서평]트럼프를 지지한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은 누구인가

입력 | 2016-11-19 03:00:00

[YES24와 함께하는 독자서평]
◇누가 슬라보예 지젝을 미워하는가/토니 마이어스 지음/박정수 옮김/278쪽·1만5000원·앨피




 ※지난 일주일 동안 349편의 독자 서평이 투고됐습니다. 이 중 한 편을 선정해 싣습니다.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그를 지지한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슬라보이 지제크)이 주목받고 있다. 대부분의 유명 인사들이 선거 전 트럼프에 대해 혐오감을 표현하고 힐러리 클린턴에게 지지를 보냈기 때문이다. 유명한 마르크스주의자로 알려진 체코 출신 철학자 지젝이 트럼프에게 지지를 보냈다는 것은 얼핏 이해하기 힘든 면이 있다. 나 역시 완전히 이해한다기보다는, 기존 질서의 변화를 원하는 지젝의 사상에는 클린턴보다는 트럼프가 적절했다는 짐작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만큼 지젝의 사상은 현실 참여적이며 변화와 개혁을 강조하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지젝의 철학은 방대한 근대 유럽의 사상과 심리학을 아우르기 때문에 처음 접하는 사람이 이해하기 어렵다. 이 같은 그의 사상을 쉽게 설명하는 저서가 ‘누가 슬라보예 지젝을 미워하는가’라는 책이다.

 이 책은 지젝 사상의 배경과 생각의 전개 과정을 쉽게 설명하고 있다. 책의 초반부에서는 지젝에게 영향을 준 세 명의 사상가를 소개한다. 헤겔, 마르크스, 라캉이다. 사실 지젝의 사상은 이들 사상의 주해라고 할 정도로 헤겔과 마르크스, 라캉의 사상을 많이 인용한다. 우선 지젝은 헤겔의 변증법을 계승했다. 헤겔의 변증법은 우리가 흔히 아는 정(正)-반(反)-합(合)의 과정을 통해 이성이나 관념이 특정한 목적을 향해 발전해 가는 과정을 다룬다. 또 지젝은 마르크스의 이데올로기 사상에 많은 영향을 받기도 했다. 문화나 정치를 이루는 상부구조는 경제를 중심으로 한 하부구조에 의해 구성된다고 주장하는 것이 그렇다. 지젝은 우리가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생각이 이데올로기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고 말한다.

 지젝은 프로이트에 대한 라캉의 새로운 해석을 받아들인다. 라캉의 사상은 난해하기로 유명하기에 지젝의 철학을 해석하기 힘들게 만드는 경향도 있다. 그러나 라캉을 통해 지젝의 철학이 가지는 독특함은 더욱 빛나게 된다.

 지젝의 철학은 헤겔과 마르크스의 사상을 라캉의 심리학으로 해석하는 독특한 방식을 사용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영화와 책들을 인용해 자신의 생각을 보다 쉽게 설명한다. ‘누가 슬라보예 지젝을 미워하는가’가 지젝의 철학을 쉽게 설명하고 있지만 그의 사상이 워낙 방대하고 기존의 사상들을 자신의 방식으로 독특하게 해석하기에, 서양철학에 대한 기본 지식이 없이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은 슬라보예 지젝이라는 철학자를 알아가는 첫 문을 열게 해 주는 좋은 입문서다.

전영민 경기 성남시 분당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