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서 90분간 첫 회담
‘실세’ 큰딸 이방카-사위도 동석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17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만나 악수하고 있다. 이날 회담에는 ‘가능한 한 적은 인원이 왔으면 좋겠다’는 트럼프 당선인 측 요청에 따라 아베 총리는 달랑 통역만 데리고 참석했다. 트럼프 측에서는 사위 재러드 쿠슈너(왼쪽), 큰딸 이방카 등이 동석했다. 사진 출처 일본 총리관저 홈페이지
아베 총리는 트럼프 당선인의 거처인 맨해튼 트럼프타워에서 1시간 반 동안 회담을 한 뒤 “차분하게 흉금을 터놓고 솔직한 대화를 나눴다”며 “기본적인 내 생각을 말했고 다양한 과제에 대해 이야기했다”고 말했지만 구체적인 대화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트럼프 당선인은 회담 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사진을 올리고 “아베 총리가 내 집을 방문해 위대한 우정을 시작하게 돼 즐겁다”고 밝혔다.
일본 언론들은 아베 총리가 선거 기간 일본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드러낸 트럼프 당선인을 상대로 일본의 처지를 전달하고 정상 간 신뢰를 구축할 토대를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NHK는 “현직 일본 총리가 취임 전인 미국 대통령 당선인을 만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라고 전했다.
‘가능한 한 적은 인원이 왔으면 좋겠다’는 트럼프 측 요청에 따라 아베 총리는 통역만 데리고 참석했다. 트럼프 측에서는 당선인 외에 큰딸 이방카, 사위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내정된 마이클 플린 전 국방정보국(DIA) 국장이 참석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일 관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뜻이 없다고 밝힌 바 있는 플린이 회담에 참석한 것을 두고 “(일본을) 안심시키려는 제스처로 보였다”고 분석했다.
회담은 예정 시간(45분)보다 두 배가량 길게 이어졌다. 아베 총리는 회담 후 기자들과 만나 상기된 표정으로 “당선인이 인사 때문에 한창 바쁠 때 시간을 내주었다”며 “트럼프 당선인이 신뢰할 수 있는 지도자임을 확신했다”고 말했다. 이어 “동맹은 신뢰가 없으면 작동하지 않는다. 함께 신뢰를 쌓아 나갈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한 회담이었다”고 자평했다. 양측은 트럼프 당선인 취임 이후 다시 만나 더 논의를 진전시키기로 합의했다.
트럼프 측은 당선인의 발언이 공개되지 않도록 신경을 쓴 것으로 전해졌다. 취임 전인 데다 TPP, 주일미군 주둔비 분담 등 양측의 견해차가 여전히 큰 만큼 첫 만남에서는 신뢰 관계를 구축했다는 점만 외부에 공표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아베 총리가 출발 전 국회에서 ‘자유무역의 중요성에 대해 말하고 싶다’고 밝힌 대로 TPP의 당위성을 비중 있게 언급했을 것으로 보인다. 니혼TV는 “미일 동맹과 북한 등 동아시아 정세에 대해서도 의견을 교환했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관례를 깨고 회담 전 국무부 브리핑을 한 차례도 받지 않았다.
이날 아베 총리는 트럼프 당선인에게 골프클럽을 선물로 전달했으며, 트럼프 당선인은 셔츠 등 골프용품을 답례로 건넸다. 아베 총리와 트럼프 당선인은 둘 다 골프 애호가로 유명하다. 블룸버그통신은 1957년 당시 일본 총리였던 아베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岸信介)가 미국 방문 중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골프를 쳤던 기록을 언급하며 “미국 대통령과 친교를 다지기 위해 골프를 사용한 할아버지의 시나리오를 빌려왔다”고 평가했다.
도쿄=장원재 peacechaos@donga.com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한기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