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존 밴빌 지음·정영목 옮김/264쪽·1만2500원·문학동네
소설 ‘바다’는 그의 대표작이자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맨부커상 수상작이다. ‘그들은, 신들은 떠났다. 조수가 이상한 날이었다’로 시작되는 소설의 도입부부터, 한국어로 옮겨졌음에도 밴빌의 뛰어난 문장 감각을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인디펜던트는 “‘바다’는 오늘날 영어로 글을 쓰는 작가들 중 가장 아름다운 문장을 구사하는 밴빌의 명성을 확인시켜 주는 작품”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바다’의 화자인 미술사학자 맥스는 아내와 사별한 뒤 바닷가 마을을 찾아왔다. 그는 유년 시절을 보낸 이곳에서 별장에 머물면서 논문을 쓴다. 논문은 프랑스 화가 피에르 보나르에 대한 것이다. 피에르 보나르가 아내의 모습을 자주 그리되 나이든 아내가 아닌 처음 만났을 때의 모습을 그리면서 ‘기억’에 그림으로 표현했듯, 맥스 역시 ‘기억’에 매달린다. 그가 머무는 시더스라는 이름의 별장에는 맥스의 특별한 기억이 얽혀 있어서다.
맥스가 연정을 품었던 그레이스 가족의 어린 딸 클로이가 사고로 죽은 뒤 맥스의 기억은 닫힌 것처럼 보이지만, 맥스는 부유한 애나를 만나 결혼하고 가난에서 벗어남으로써 ‘스스로를 부인하게 된다.’ 그러나 애나의 죽음, 그리고 묻혔던 기억 속 클로이의 죽음을 맞닥뜨리면서 맥스는 스스로에 대해 질문하게 된다. “이제 나에게 남겨진 문제는 바로 아는 것의 문제다. (…) 내가 나 자신이 아니라면 나는 누구인가?” 언어를 갈고 닦아 한 문장 한 문장 빛나도록 만드는 밴빌의 작품 속에서 이 질문은 당연하게도,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던져지는 것이다. 과거와 현재, 달라졌다고 생각하는 오늘의 모습과 유년의 기억 사이에서 당신의 대답은 어떠하냐고.
김지영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