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출구로 나가든 대통령에 대한 국민 신뢰가 사라졌다는 사실은 변함없어 대국민 사과조차 거짓말… 검찰 수사 깡그리 부정하고 수사까지 안받겠다는 건 의외 대통령은 자리 떠날 때까지 겸허하고, 또 겸허해야 한다 지금부터가 정말로 ‘대한민국과 결혼할 때’다
심규선 대기자
크든 작든 언론이 오보를 했다면 잘못이다. 그런데 청와대가 이 시점에서 허겁지겁 만든 코너가 겨우 오보에 대한 공세라니. 숲은커녕 나무도 아니고 나뭇잎만 보는 것 같다.
‘세월호 7시간, 대통령은 어디서 뭘 했는가?’라는 해명을 보자. 분 단위로 대통령의 집무 내역을 ‘상세히’ 공개하고 있다. 청와대는 이것으로 모든 의혹이 해소된 것처럼 기술하고 있다. 천만의 말씀이다. 대통령은 당일 관저 집무실 및 경내에서, 보고를 받고 지시를 내린 게 30여 차례나 된다고 했다. 그렇다면 왜 그날만 본관 집무실로 출근을 안 했는지, 그 이유가 궁금하다. 또한 거의 모든 보고와 지시를 서면과 전화로 했는데 그 화급한 순간에 왜 대면보고를 받고 직접 지시를 안 했는지도 정말로 알고 싶다. 서면보고는 대통령이 읽었는지도 의문이다. 이 해명은 자연인 대통령이 청와대 경내에 있었다는 증거는 될지 모르지만, 최고 지도자 대통령이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 정상적인 판단을 내릴 상황에 있었는지는 증명하지 못한다.
그런데 청와대의 홈페이지 정도를 갖고 대통령의 현실 인식을 비판한 기자의 현실 인식이 더 물렀던 것 같다. 대통령은 어제 대통령을 직권 남용과 강요 혐의의 공범으로 입건한 검찰의 수사 결과를 깡그리 부정했다. 검찰 수사도 받지 않겠다고 했다. 대국민 사과 담화에서조차 진실을 말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 대통령의 이런 당당함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지 궁금하다. 식물대통령이 성난 민심을 외면하는 것이 죽은 제갈공명이 살아 있는 사마중달을 겁주는 형국이다. 대통령 주변에 민심을 올바로 전할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는, 갈라파고스 청와대를 다시 한 번 확인한다.
기자는 물론 이번 사태가 국민과 국가에 가장 피해를 덜 주는 방법으로 해결되길 바란다. 그 방법이 무엇인지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어떤 식으로든 수렴이 될 것이다. 그러나 기자가 더 주목하는 것은 하야든, 탄핵이든, 질서 있는 퇴진이든, 아니면 최악의 경우 임기를 채우든 대통령은 겸허하고, 또 겸허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를 불행과 갈등의 나락으로 밀어 넣은 장본인이 바로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제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의 발표를 이렇게 돌려주고 싶다.
“오늘 청와대는 대변인 발표를 통해 마치 대통령이 아무런 잘못이 없는 것처럼 주장하였습니다. 청와대의 오늘 발표에 대해 먼저 심히 유감스럽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대변인의 오늘 발표는 전혀 사실이 아니며 객관적인 증거는 무시한 채 희망과 소망을 거듭해서 지은 사상누각일 뿐입니다. 그간 밝혀 온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와 현실 인식은 겸허하고 공정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대통령의 일방적 주장만 있는 현재 상황에서 전혀 입증되지도 않은 대변인의 주장이 사실인 것처럼 오해되거나 정치적으로 악용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국민들은 촛불집회 등을 통해 민심을 표현했는데도 대통령의 안이한 현실 인식으로 인해 국민의 뜻을 정확히 전달할 기회를 갖지 못했고, 앞으로 잘못된 선택을 바로잡을 수 있는 법률적 수단도 없는 상황입니다. 따라서 자랑스러운 지도자와 훌륭한 정부를 가질 헌법상의 권리는 박탈당한 채 부당한 변명에 노출되고, ‘이게 나라냐’는 글로벌 수치를 감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국민은 질서 있는 집회를 통해 대통령의 결단을 기다려 왔으며, 앞으로도 성숙한 국민의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입장입니다. 현 단계에서 대통령의 편향된 주장에만 근거해서 부당한 정치적 공세가 이어진다면 국정 혼란이 가중되고 그 피해는 결국 우리 모두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경우라면 차라리 헌법상 법률상 책임 유무를 명확히 가리기 전에 대통령의 애국적 결단으로 이 논란이 매듭지어지기를 바랍니다. 국민은 앞으로도 국가가 흔들리지 않도록 겸허한 자세로 모든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대통령의 현실 인식의 부당함을 지적하며, 앞으로의 국민 행동을 지켜봐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심규선 대기자 kss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