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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남성욱]한일 군사협정, 조급증은 금물이다

입력 | 2016-11-21 03:00:00

남성욱 고려대 행정대학원장·전 국가안보전략연구소장


 인류 문명의 수수께끼를 새로운 시각으로 풀어내는 미국의 석학 재러드 다이아몬드 박사는 ‘총·균·쇠’라는 명저에서 한국과 일본을 ‘유년기를 함께 보낸 쌍둥이 형제’로 비유했다. 그는 지난 1만3000년간 지리적 조건이 세계사에 미친 영향을 분석했다. 한국의 지리적 위치는 한국의 운명을 좌우하였다고 지적했다. 중국과 일본 사이에 위치한 한국은 필연적으로 양국과 불가분의 관계이기에 과거 역사에만 매몰되지 말라고 조언했다.

 한일 간의 외교 교섭은 항상 난제다. 특히 군사협력은 더욱 그렇다. 2012년 밀실 추진 논란으로 중단됐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체결이 4년 만에 초읽기에 들어갔다. 안보적 측면의 필요성은 공감대가 형성됐다. 5차 북핵 실험과 일련의 미사일 위협 대응 차원에서 한일 간 군사정보 공유 협력의 필요성이 증대됐다. 특히 정보수집위성 5기, 이지스함 6척, 탐지거리 1000km 이상 지상레이더 4기, 조기경보기 17대, 해상초계기 77대 등 일본의 우수한 정보자산을 활용하는 실익은 매력적인 측면이다. 일본의 대북 정보를 미국을 경유할 필요 없이 한일 양자 간 직접 공유함으로써 정보의 신속성을 향상할 수 있다.

 하지만 국제정치 및 정서적 측면의 논란은 여전하다. 우선 정보보호협정이 ‘양날의 칼’이라는 점이다. 일본의 군사대국화로 협정이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의 단초를 제공할 수 있다. 향후 상호군수지원협정(ACSA) 등 후속 군사협정이 대기 중이다. 정부는 우리의 요청이나 동의 없이 자위대의 한국 영역 진입은 불가라고 주장한다. 반면 지난해 10월 나카타니 겐(中谷元) 일본 방위상은 한민구 국방부 장관과의 회담에서 자위대가 북한에 진입할 때 한국의 동의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언급했다. 한국의 지배 유효 범위는 ‘휴전선 남쪽’이라는 인식이다. 북한 급변사태 발생 시 정보 수집 명목으로 자위대 이지스함이 원산과 남포항에 무단 입항하는 사태도 배제할 수 없다. 자위대가 평양에 일장기를 태극기보다 먼저 게양할 수도 있다. 한국이 러시아 등 32개국과 협정을 체결한 것과 한반도 침략 역사가 있는 일본과의 군사협정은 의미가 다르다.

 중국을 자극하여 동북아 평화체제를 위협한다는 지적도 고려해야 한다. 중국은 사드 배치 부지 확정에 이어 협정 체결로 한미일 동맹이 자국을 압박한다는 시각이다. 특히 9월 초 라오스 동아시아정상회의에서 미국 측의 강력한 요구로 협상이 재개된 점도 중국은 예의 주시했다. 앞으로 중국의 북한 포용정책은 지속될 것이고 북-중-러 대 한미일 신냉전 구도의 형성은 불가피하다. 5차 핵실험 이후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안은 두 달이 지나도 무소식일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절차상의 논란이다. 2012년 협상 추진 과정에서 가서명 사실 미공개, 제목에서 ‘군사’를 뺀 것, 차관회의 없는 국무회의 상정 등 절차상의 문제를 노정했다. 정부는 이번 협상 전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한다는 방침이다.

 추진 시기상의 논란도 피할 수 없다. 5% 지지율의 대통령이 한일 간의 민감한 사안을 매듭짓는 것은 국민 정서와 배치된다. 미국 대통령 선거 이후 한미일 관계가 새로 논의되는 과정에서 한일 협정도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카드다. 국정이 안정된 후 협정을 체결해도 늦지 않다. 한일 관계가 대등하다고 판단되지만 일본은 여전히 버거운 상대다. 일본은 육지의 국토 면적은 남한의 4배, 인구는 3배, 국내총생산은 5배 이상이다. 대륙을 침략하고자 하니 길을 빌려 달라는 임진왜란 당시 일본의 정명가도(征明假道) 논리는 21세기에도 유효하다. 한일 군사협력에서 좌고우면은 나쁘지 않다. 특히 촛불시위로 정국이 혼전인 상태는 더욱 그렇다.
  
남성욱 고려대 행정대학원장·전 국가안보전략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