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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형의 생각하는 미술관]<46>세월 속에서 더 또렷해지는 것들

입력 | 2016-11-22 03:00:00


모딜리아니, ‘잔 에뷔테른’.

 아메데오 모딜리아니(1884∼1920)는 이탈리아 출신 화가였습니다. 20세기 예술의 수도 파리, 가난한 예술가의 집합소 몽마르트르에서 서른여섯 해 짧은 생을 마감했어요. 비운의 화가는 당대에 인정받지 못한 미술을 유산으로 남겼습니다. 특히 초상화가 많았지요.

 당시 초상화는 인기가 시들했습니다. 카메라가 발명되었거든요. 초상화의 주인공은 힘 있고, 부유한 주문자에서 화가 주변 인물로 바뀌었습니다. 화가가 모델을 직접 선택하면서 예술적 자유도 커졌어요. 초상 사진과 다른 초상화를 제작하고자 활발한 형식 실험도 전개되었지요. 친구와 연인을 신비롭고, 우아하게 표현한 화가의 초상화는 이런 시대 정황과 무관치 않습니다.

 화가의 삶과 예술에서 잔 에뷔테른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예술의 뮤즈이자 생의 반려자였어요. 단정한 미술가 지망생은 자유로운 화가를 뜨겁게 사랑했습니다. 하지만 프랑스 중산층 가톨릭 가정에서 마약과 술에 찌든 가난하고 병약한 화가를 사윗감으로 반길 리 없었습니다. 여성 집안의 결혼 반대가 극심했지요. 두 사람은 혼인 절차 없이 함께 살기로 했습니다. 첫 전시가 개최되며 화가 삶에 전기가 마련되는 듯했습니다. 건강을 회복하고 그림 판로를 개척하려 힘도 썼지요.

 그림 속 임신한 아내가 붉은 숄을 두르고 있군요. 화가는 이 무렵 서서히 지쳐갔지요. 이런 남편과 달리 초상 속 아내는 고요하기만 합니다. 공허한 눈빛에서 마음의 동요를 찾아내기 어렵습니다. 곧 들이닥칠 비극적 운명을 예감할 수 없습니다.

 현실의 벽은 높았습니다. 아내는 첫아이와 친정으로 향했지요. 남편의 사망 소식을 접한 것은 얼마 후였어요. ‘천국에서도 내 모델이 되어 달라.’ 생전 남편의 속삭임에 ‘그럼요’라고 답했던 아내는 고통에 몸부림쳤습니다. 남편이 죽은 다음 날, 상심한 22세 아내는 5층 아파트에서 투신해 남편 뒤를 따랐지요. 그림 속 무기력해 보이는 여인이 스스로 삶을 마쳤다니 믿기지 않습니다. 

 어떤 사랑은 끝난 뒤에도 누군가의 삶에 깊숙이 개입합니다. 어떤 예술은 시간을 건너 누군가의 마음에 강렬함을 전합니다. 두고두고 회자되는 격정적 사랑과 위대한 예술처럼 세월 속에서 더욱 또렷해지는 것들이 있지요. 어느 한 날, 수많은 사람들이 광장에서 밝혔던 간절함의 촛불도 그렇지 않을까요.

공주형 한신대 교수·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