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야마구치 히데코 일본 출신 서울 외국인주민대표자회의 소속
일본에서 어릴 때 듣는 말 중 하나는 “자기 일은 자기가 스스로 하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는 것인데 그런 말들은 평생 귓가를 맴돌아서 일본인의 삶을 좌우한다. “자기가 해야 할 일은 자기가 스스로 하라”는 말은 당연한 말이지만 독립심을 기르기 위한 준비 단계가 있다. 자녀 수가 한두 명인 일본에서는 남매일 경우 무조건 초등학교 중고학년이 되면 독방을 쓰고 자매들도 각자 쓸 확률이 높다. 엄마를 부르는 호칭도 초등학교 1, 2학년 때 ‘오카짱’에서 ‘오카상’으로 고쳐 주기도 한다. 한국에서 말하자면 ‘엄마’를 ‘어머니’라고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것 하나로 의식적으로 긴장감을 주기도 한다.
한국의 학부모는 힘들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매일 준비물을 챙기는 일은 엄마의 숙제가 되고 알림장을 들고 매일 아침 문방구를 찾아가야 한다. 오래전부터 맞벌이 부부가 대다수인 일본에서는 가정마다 준비물을 챙기는 일은 거의 없다. 시켜도 학생이 할 수 있는 일만 시킨다.
성인식에도 큰 차이가 있다. 일본의 성인식 날은 공휴일이고 관공서에서 크게 축하행사를 열어 준다. 그날은 여자아이를 위해서 부모가 기모노를 준비한다. ‘후리소데’라고 불리는, 소매가 땅 가까이까지 가는 전통 옷인데 엄청 비싸다. 손작업으로 자수를 놓는 것은 한국 돈으로 1억 원까지 가는 것도 있다. 성인식 때 모두 그렇게 비싼 것을 사 입지는 않는다. 대여 서비스도 많아졌다.
여자들은 성인식 때 미용실에서 머리도 올려 장식하고 화려한 기모노를 입고 파티 주인공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행사에 임한다. 행사는 거의 100% 참석하고 선물도 받는다. 성인이 되는 설렘과 자각심을 갖게 해주는 행사이기에 많은 사람이 성인식을 즐긴다.
한국에서는 성인식 날이 공휴일이 아니라서 행사에 참석하기 어렵다고 한다. 이미 18세 때 주민등록증이 나오다 보니 그것이 성인식보다 더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성인이 되고 사회인으로서 책임감을 자각하기 위해 성인식을 국가 차원의 행사로 승격시키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어떤 면에서 한국은 부모와 자식 간의 밀접한 관계가 평생 지속되고 결혼, 집 장만 등에서 부모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한국에서 산 지 얼마 안 됐을 때 드라마에서 부모가 신분 차이 등의 이유로 결혼을 반대하는 장면을 수 없이 보고 깜짝 놀랐다.
일본 문화는 서양의 영향을 많아 받아 독립심과 개인 책임의 비중이 크다. 어렸을 때부터 독립심을 기르고 혼자 해나가는데, 부모와는 성인 대 성인의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전통이 있는 가문이라든가 대기업 경영자 가정이 아니면 결혼 준비도 당사자끼리 해결한다. 결혼식도 당사자가 아는 사람에게만 엽서를 보내고 출결 표시를 해서 다시 회신하고 확정된 참석자 이름을 탁상에 올려놓는다. 초대받은 사람만 참석할 수 있다.
거기에 비해 한국에서는 결혼식도 장례식도 당사자가 모르는 사람들(가족들과 인연을 맺은 사람들)까지 모두 찾아온다. 그래서 행사를 치르는 데 큰 힘이 되어 주는 느낌이 든다. 이럴 때는 한국의 부모 자식 간의 밀접한 관계가 돋보인다. 독립심도 중요하지만 서로의 도움이 필요할 때 자연스럽게 정을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가 바람직하지 않을까.
야마구치 히데코 일본 출신 서울 외국인주민대표자회의 소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