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진호 어문기자
‘개털과 범털.’ 죄수들의 은어(隱語)로 말본새는 좀 그렇지만 둘 다 표준어다. 개털이 돈이나 뒷줄이 없는 일반재소자라면, 범털은 돈 많고 권력 있는 거물급 재소자를 가리킨다. 범털이 있는 방이 ‘범털방’인데, ‘개털방’은 잘 안 쓴다. 그 대신 ‘쥐털방’이 있다. 살인범이나 강도범 등 흉악범을 가둔 방을 그렇게 부른다. 아 참, 헌정 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이 피의자가 되는 바람에 범털 중의 범털을 일컫는 말이 생겨날지도 모르겠다.
늙은 사람을 낮춰 부르는 말은 ‘노털’일까, ‘노틀’일까. 많은 이가 ‘노인의 털’이나 ‘오래된 털’쯤으로 여겨 ‘노털’로 알고 쓰지만, ‘노틀’이 옳다. 노인을 뜻하는 중국어 ‘라오터우얼(老頭兒)’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노틀’로 바뀐 것이다. 한데 어쩌랴. 언중은 하나같이 ‘노털’이라고 하니. 표준어 아귀찜 대신 사투리 아구찜이 더 행세를 하는 것처럼.
또 있다. 터럭줄이 변한 ‘타락줄’은 사람의 머리털을 꼬아 만든 줄이다. ‘털너널’은 몹시 춥거나 먼 길을 갈 때 덧신는, 털가죽으로 크게 만든 버선이다. ‘털수세’는 털이 많이 나서 험상궂게 보이는 수염을, ‘터럭손’은 터럭이 많이 난 손을 말한다. 그러니 ‘털’과 ‘터럭’은 형제다.
19일에도 방방곡곡에서 촛불 시위가 벌어졌다. 최순실 국정 농단의 진실을 털끝만큼도 숨기지 말고 모두 밝히고, 분명하게 책임을 지라는 민심의 표현이다. 근데 뭐? 촛불은 바람이 불면 꺼진다고?
손진호 어문기자 songba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