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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전 살인범 잡은 막내형사 집념

입력 | 2016-11-22 03:00:00

1998년 서울 30대주부 성폭행 살해… 당시 수사팀 말단 김응희 경위
가슴에 품은 미제사건 6월 재수사… 8000명 혈액형-DNA 대조해 검거
피해자 아들 “어머니 恨 이제 풀려”




 

영구미제(未濟)로 남을 뻔한 18년 전 부녀자 살인사건의 범인이 끝내 검거됐다. 사건 해결의 원동력은 경찰의 끈질긴 추적과 유전자(DNA) 대조였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1998년 서울 노원구의 한 아파트에서 34세 가정주부를 성폭행한 뒤 목 졸라 살해한 혐의(강간살인 등)로 오모 씨(44)를 구속했다고 21일 밝혔다.

 경찰은 사건 직후 서울 도봉경찰서에 수사본부를 설치하고 혈액형 정보(AB형)와 DNA가 담긴 피의자 체액, 피해자에게서 빼앗은 신용카드로 현금을 인출할 때 찍힌 폐쇄회로(CC)TV 사진 등 단서를 하나씩 모아 갔다. 하지만 약 2년간 이어진 수사에도 피의자가 누군지 파악하는 데 실패해 수사는 흐지부지 끝났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 김응희 경위(54·사진)는 당시 경장으로 수사본부의 막내급이었다. 항상 ‘노원구 부녀자 살인사건’을 잊지 못했던 김 경위는 올해 6월 사건 파일을 다시 꺼내들었다. 그는 “형사라면 누구나 해결하지 못한 사건을 가슴에 품게 되는데 바로 이 사건이 그랬다”라고 말했다.

 수사 환경은 김 경위의 편이었다. 원래 이 사건의 공소시효는 15년으로, 2013년 종결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2010년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제정되면서 DNA가 확보된 경우 공소시효가 10년 연장돼 이 사건은 2023년까지만 범인을 잡으면 처벌할 수 있게 됐다. 같은 해 흉악범에 대한 DNA 데이터베이스(DB)도 구축됐다.

 김 경위와 동료들은 우선 살인, 강도 등 유사 수법 전과자 가운데 범인과 비슷한 연령대로 추정되는 1965∼1975년에 출생한 8000여 명을 추려냈다. 혈액형 등을 통해 용의자를 125명으로 좁혔지만 수사는 더 진전되지 않았다. DNA DB에 정보가 남아 있는 용의자들은 모두 범인과 DNA가 달랐다. 경찰은 수감 중인 용의자들의 DNA를 채취하기 위해 교도소까지 찾아갔지만 허탕이었다.

 괜한 짓을 하고 있는 것 아닌가 자포자기할 때쯤 경찰은 남은 용의자 가운데 강도 전력이 있는 오 씨를 주목했다. 18년이 지났지만 사진 속 범인과 오 씨는 꽤 닮은 얼굴이었다. 경찰은 지난달 경기 양주시에 있는 오 씨의 자택을 찾아 그가 버린 물건에서 DNA를 확보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정을 의뢰한 결과 범인의 그것과 일치했다. 잠복 끝에 18일 오 씨를 자택 부근에서 붙잡았다. 오 씨는 “전셋집을 구하던 중 피해자 집을 찾았다 충동적으로 성폭행한 후 살해했다”고 범행을 시인했다.

 김 경위는 재수사에 나선 뒤에도 범인을 붙잡지 못하면 유족들에게 다시 상처를 줄까 봐 이를 알리지 못했다. 뒤늦게 사실을 알게 된 유족은 “잡을 수 없으리라 생각해 다 잊으려 했는데 경찰에 감사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사건 당시 10세였던 피해자의 아들 성모 씨(28)는 “어머니의 한이 18년 뒤에야 풀린 것 같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차길호 kilo@donga.com·김단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