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한 의사·기자의 따뜻한 의료기기 이야기

하지만 열이 정상 신체 조직에도 손상을 일으켜 회복이 늦춰지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최근엔 수술 과정에서 열을 가하는 의료기기 대신 얼리거나 붙이는 등 새로운 대체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흐름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의료기기가 바로 하지정맥류 치료에서 접착제를 사용하는 시술법입니다. 흔히 하지정맥류는 다리에서 혈관이 돌출해 보기 흉한 병으로만 알려져 있지만, 극심한 통증과 부종 등을 동반해 삶의 질을 낮추고, 심하면 피부 궤양까지 유발할 수 있습니다.

심장이 멋대로 뛰는 심방세동(부정맥의 일종) 치료에 열 대신 냉각을 이용해 치료하는 의료기기도 외국에서 출시됐습니다. 흔히 열을 이용하는 전극 도자절제술은 혈관을 통해 들어간 카테터 끝에 열을 전달해 심장에서 부적절한 전기 신호를 내 보내는 부위를 태우고 절제합니다. 하지만 얇은 카테터의 끄트머리로 이상 부위를 정확히 절제하기란 쉽지 않아서 여전히 심방세동의 재발률은 높았습니다.
새로 등장한 냉각 도자절제술은 열로 해당 부위를 태우는 것이 아니라 액화질소가 들어간 풍선 카테터를 활용해 문제 부위를 얼립니다. 이 같은 전혀 다른 치료 접근은 환자의 심장근육에 가해지는 부담을 덜면서 재발률을 낮추고 있습니다. 미국 유럽 일본 등에서 사용되고 있으며 국내엔 아직 허가가 나지 않았습니다. 열 발생 의료기기가 오랫동안 지켜온 자리에 이같이 전혀 새로운 개념의 의료기기가 대체 되면서 환자의 건강과 삶의 질 개선, 치료비 경감으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진한 기자·의사 liked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