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준 교수가 10년간 분석한 ‘…왕실재정과 서울상업’ 관련 토론 “식민지근대화론 시각” 비판에 “근대화, 개항 효과 가장 커” 반박
16일 서울 종로구 아산정책연구원에서 조선 후기 재정 적자에 대해 토론하고 있는 조영준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가운데)와 토론자들. 아산정책연구원 제공
“재정 적자는 조선시대 경제 변수의 10∼15%만 설명해 줄 뿐이다. 내 책이 망국론으로 읽히는 것은 굉장히 불쾌하다.”(조영준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최근 서울 종로구 아산정책연구원에서 열린 ‘조선 후기 왕실재정과 서울상업’(조영준 지음·소명출판) 서평 모임. 책을 쓴 소장학자와 원로학자는 학술토론 특유의 격식은 갖추되 치밀한 논리로 일합을 주고받았다. 이날 모임은 국제정치학, 사회학, 역사학 등 여러 전공과 연령대의 학자들이 참석해 다양한 지적 스펙트럼을 보여줬다. 망국론은 학계의 핵심 논점 중 하나여서 이들의 열의도 뜨거웠다.
연구 결과 조선은 이미 1874년부터 재정 적자가 계속 누적돼 심각한 채무불이행 상태에 빠졌다. 결국 왕실은 궁방 근로자들의 임금을 체불하고 시전상인들에게 납품대금을 지급하지 않는 방식으로 부담을 떠넘긴 것으로 나타났다. 조 교수는 “조선 왕실은 문제가 발생한 국가제도를 바꾸지 않고 궁방과 같은 비공식 조달기관을 계속 운영했다”고 지적했다.
토론에서는 이 책이 식민지근대화론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 선임연구원은 “수탈자로서 왕조의 이미지는 1908년 일본이 제실 재산을 정리하면서 시전상인들에게 미지급금을 일부 변제한 것과 대비된다”며 “자본주의 발달에 저해된 조선왕조와 이를 촉진한 합리적인 식민정부로 거칠게 정리될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조 교수는 “식민지근대화론을 지지하기 위해 조선 후기의 어두운 부분을 부각시켰다는 독자들의 비판이 일부 있었지만 나는 식민지근대화론을 주장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이와 관련해 그는 생활수준을 보여주는 지표로서 조선인들의 연도별 ‘평균 키’에 주목하고 있다고 했다. 조 교수는 “평균 신장이 16세기 후반부터 지속적으로 작아지다가 개항이 시작된 1880년대부터 반등한 것으로 조사된다”며 “한국의 근대화와 생활수준 향상은 식민지보다 개항의 효과가 가장 컸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