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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칼럼]탄핵이 몰고 올 조기 대선과 새판 짜기

입력 | 2016-11-23 03:00:00

박 대통령 탄핵이 정계개편 기폭제 될 수 있다
공소장에 적힌 범죄사실 탄핵 근거로 부족함이 없어
무기명 탄핵소추 투표… 친박 의원도 의리에 얽매이지 않을 것




황호택 논설주간

 두 여인이 대한민국의 시계를 40년 전으로 돌려놓았다. 1976년 사교(邪敎) 교주 최태민은 박정희 대통령의 딸 근혜 양을 내세워 구국봉사단(1978년 새마음봉사단으로 개칭)을 만들고 재벌들의 돈을 뜯어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최순실이 박근혜 대통령을 업고 미르·K스포츠라는 사금고(私金庫) 재단을 만들어 재벌을 갈취한 수법은 아버지 최태민에게서 그대로 배웠다. 

 일국의 대통령이 대기업 회장을 독대하는 자리에서 경제수석이라는 사람은 최순실 광고회사의 홍보물을 건네주고 광고를 주라며 정부부처의 계장이 해서도 안 될 짓을 했다. 창조경제혁신센터의 공식 퍼포먼스가 끝나면 최순실에게 돈이 되는 거래가 대통령과 재벌 회장의 독대 자리에서 이뤄졌다. 설립 과정에서 재계에 위세를 과시한 K스포츠의 직원들은 삼성 SK 같은 기업을 찾아가 최순실의 개인회사인 비덱스포츠로 수십억 원씩 보내라는 요구를 하고 다녔다. 정말 역사를 40년 전 권위주의 시대로 후퇴시킨 부끄러운 권력형 범죄다.  

 나는 100만 군중(주최 측 집계)이 운집했다는 12일 촛불집회를 관찰하면서 박 대통령이 임기를 채우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토요일(26일)에 또 엄청난 군중이 나와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할 것이다. 그러나 민중봉기나 피플파워에 의해 대통령이 쫓겨나는 나라는 민주주의의 후진국이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뿌리내린 국가에서 대통령이 불법행위로 국민의 신망을 잃었을 때는 헌법에 따른 탄핵 절차를 밟는다.   

 하야는 봉건적인 냄새가 나는 용어로 사임이나 사퇴가 맞다. 대통령이 사임한 일이 한국 현대사에서 세 번 있었다. 4·19 직후의 이승만, 5·16 이후 윤보선, 5·18 이후 최규하 대통령이 임기를 남겨두고 사퇴했다. 윤, 최 대통령은 군부가 쿠데타로 실권(實權)을 장악한 상태에서 명목뿐인 대통령직을 내려놓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사퇴한다면 윤, 최 대통령보다는 민심의 분노에 의해 쫓겨난 이 대통령의 하야와 비슷하다. 3·15부정선거에 항의하는 학생들이 경찰의 총격을 받고 유혈사태가 나자 이 대통령은 계엄을 선포했지만 송요찬 육군참모총장을 비롯한 군인들은 시위 군중을 향해 총을 쏘지 않고 국민의 편에 섰다.

 경찰도 대통령의 불법행위에 항의하는 평화집회의 질서를 관리하느라 피로가 누적되고 있다. 이번 촛불집회는 폭력사태도 없고 대한민국을 세계에 부끄럽게 만든 대통령에 대한 규탄이라는 점에서 법원의 가처분 결정도 정당성을 인정했다. 그러나 과거 광우병 촛불시위를 돌아보면 촛불 민심이 언제나 정당하고 합리적인 것은 아니다. 촛불시위로 대통령을 권좌에서 내려오게 하는 것은 헌정사에서 나쁜 선례를 남길 수 있다.

 “5000만 국민이 달려들어 내려오라고 해도 거기 앉아 있을 것”이라고 말한 JP(김종필)의 인물평이 들어맞는지 박 대통령은 금방 탄로 날 거짓말을 이어가며 위기를 모면하려는 태도를 드러내고 있다. 혐의 사실을 건조하게 기록한 검찰 공소장을 ‘환상의 집’ ‘사상누각’이라고 공격하면서 “차라리 탄핵을 하라”는 청와대의 대응을 보면 임기 전에 사퇴할 생각이 없는 것은 확실하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직을 박탈해야 할 정도가 못 되는 법률위반 행위로 탄핵소추가 돼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됐다. 어떻게 보면 한나라당과 새천년민주당 의원들이 노 대통령의 절묘한 승부수에 넘어가 탄핵안은 헌재에서 기각되고 총선에서 패배했다. 그러나 최순실의 사설(私設) 정부에 권한을 넘겨주고 부정한 이권개입을 공모한 박 대통령은 국가 최고지도자로서 대통령의 권위를 이미 상실했을 만큼 죄상이 중대하다. 박 대통령이 임명한 검찰총장과 서울중앙지검장이 박 대통령의 범죄 혐의를 공소장에 적시했듯이, 박 대통령이 임명한 헌법재판관들도 법률가의 양심으로는 탄핵을 반대할 수 없을 것이라고 다수의 헌법학자는 말한다.

 국회의 탄핵소추안 표결은 무기명(無記名)투표 방식이어서 야당에서도 반란표가 나올 수 있지만 거꾸로 생각하면 친박들도 대통령과의 의리에 얽매이지 않고 국가와 국민을 위해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다. 대통령이 탄핵을 당하면 60일 이내에 조기(早期) 대선을 치러야 하고 정치권이 요동을 치면서 새판이 짜일 것이다. 새누리당은 탄핵 찬성 의원들을 중심으로 해체 재편되는 과정을 거치며 건강한 보수세력을 대표하는 정당으로 새롭게 태어나야 내일을 기약할 수 있다. 
 
황호택 논설주간 ht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