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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명소’로 떠오른 백석대 산사 현대시 100년관

입력 | 2016-11-24 03:00:00

2013년 개관 후 年 5000여명 방문, 4관으로 나눠 1만여점 자료 전시… 시 동호인들 방문 줄이어




현대시박물관에는 유명 시인들의 방문도 끊이질 않는다. 신달자 시인(맨 앞)이 시인들의 초상화가 내걸린 벽을 가리키면서 동행한 시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산사 현대시 100년관 제공

 충남 천안시 백석대 창조관 13층에는 국내에서는 유일한 시 박물관인 ‘산사(山史) 현대시 100년관’이 있다. 2013년 11월 개관한 지 꼭 3년 만에 연간 5000∼6000명이 다녀가는 문학의 명소로 부상했다.

 이 박물관은 현대시 평론가인 산사 김재홍 명예관장(69·전 경희대 국문과 교수)이 관련 자료 1만6000점을 백석대에 기증해 탄생했다. 그가 문학소년 시절부터 강단에서 강의하던 시절까지 청계천 헌책방과 문단 지인 등을 통해 모아온 시집과 시화 등이다. 최고의 희귀본은 문화재 470호로 지정된 김소월 시집 ‘진달래꽃’ 초판본이다. 현재 국내에 남아 있는 이 시집의 초판본 2권 가운데 나머지 한 권이 최근 1억 원에 경매됐다.

  ‘한국 현대시 100년사’라는 이름이 붙은 1관은 최초의 현대시로 분류되는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1908년) 이후 100년 동안 기라성 같았던 시인들의 대표시와 이들의 초상을 활용해 한국의 시문학사를 입체적으로 정리했다. 김춘수의 ‘꽃’과 이근배의 ‘살다가 보면’ 등 12개 작품이 내걸린 ‘시의 벽’ 앞에서 관객들은 이따금 직접 시를 낭송해 본다. 천안시가 최근 도솔공원을 만들면서 이 박물관의 ‘시의 벽’을 벤치마킹했다.

  ‘형상 없는 그림’이라는 시와 ‘형상 있는 시’라는 그림이 각각 조를 이룬 2관(시와 그림) 한편에서 황경연 학예사가 기자를 멈춰 세운다. 시와 그림에 얽힌 한 형제의 기막힌 조우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서다. 위쪽의 그림은 이중섭 미술상을 수상한 남한의 화백 김한이 그린 고향 함경남도 명천의 한 포구. 바로 밑의 시 ‘포구의 겨울’은 북한의 공훈시인 김철이 같은 곳을 그린 작품이다. 언젠가 김 화백이 “포구의 겨울을 읽고 작자가 혹시 6·25전쟁 때 헤어진 동생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김 명예관장에게 확인을 부탁했다. 김 명예관장이 다각도로 수소문한 결과 김 화백의 예감은 적중했다. 형제는 이렇게 기별이 닿아 2003년 서울에서 열린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에서 만났다. 형제는 다시 헤어졌고 그 후 둘 다 세상도 떠났지만 시와 그림을 통해 나란히 손을 잡고 고향의 포구를 거닐고 있다.

 3, 4관으로 가면 서정주, 고은, 나태주 등 익숙한 시인들의 육필 시를 담은 병풍이 늘비하다. 전북 고창이 고향인 서정주는 붓으로 직접 ‘국화 옆에서’를 정갈하게 써내려 갔는데 소쩍새를 전라도 방언인 ‘솟작새’로 바꿔 적어 향수를 달랬다.

 박물관 측은 연간 3, 4차례 ‘시와 함께하는 힐링 타임’이라는 강연회를 갖는다. 23일에는 윤천균 화백의 ‘고행으로 가는 환희’가 열렸고, 30일에는 최근 한국서정시 문학상을 받은 김명인 시인의 강연이 마련돼 있다.

 시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긴 대시인들은 ‘애씀이 종종은 헛되다’라는 통찰을 표현함으로써 방문자들을 힐링으로 이끈다. ‘소(道를 이름) 찾으러 왔더니/소 한 마리 보지 못하니, 허 허 허’라는 고은의 육필로 메모한 시가 그렇다. 바위에 새겨져 전시된 그의 짧은 시 ‘그 꽃’은 이 박물관에서 관람객들이 가장 많이 홀로 읊조려 보고 메모해 가는 시 가운데 하나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관람 문의 041-550-2631

지명훈기자 mhj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