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지희 능률교육 콘텐츠개발본부 대리
사실 결혼 전에는 김장 문화를 겪을 일이 없었다. 식당을 하던 손 큰 이모 덕분에 우리 집 김치는 늘 거기서 공수해왔다. 배추 값이 금값이라는 둥, 고춧가루가 올해는 시원찮다는 둥, 그런 이야기들은 하등 내 알 바 아니었다. 하지만 엄마는 김치가 없으면 큰일 날 것처럼 이모네 김장 날에 찾아가 큰 통에 김치를 가득가득 담아왔다.
그렇게 딱히 내 관심을 사지 못하던 김장은 열아홉 살 수능을 치르던 해에 나를 단단히 울렸다. 친구의 어머니들이 교문에 엿을 붙이고 빌거나 산 정상에 올라 바위에 절을 하고 있을 때, 무뚝뚝하기 그지없던 경상도 토박이 엄마는 김장을 했다. 캄캄해진 저녁에 수능 고사장을 빠져나와 만난 엄마의 옷에는 젓갈 냄새가 진하게 배어 있었다. “잘 칠 놈은 다 잘 친다. 내가 기도 좀 보탠다고 니가 한 개 더 맞히는 그런 게 수능이가.” 멸치젓 냄새보다 더 강하게 진동했던 엄마의 쿨함 때문에 수능을 망친 것 같았다. “다 엄마 때문이다, 갓바위 가서 절 몇 번 하는 게 그렇게 어렵더나! 그깟 김치가 뭔데!” 나는 펑펑 울며 세상의 모든 김치를 미워하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김장을 겪고 나니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사계절 내내 배추를 구할 수 있고, 종가집의 비법을 담은 시판 김치가 이토록 잘 나오는 시대에 김장이란, 겨우내 먹기 힘든 채소를 공급하고자 미리 비축해두는 작업이 아니었고, 반드시 이 시기에 만들어 먹어야 하는 제철 음식도 딱히 아니었으며, 겨울의 벽을 넘어설 반찬을 마련하는 거룩한 의식도 더 이상 아니었다. 다만 이제 김장은 그 자체로 하나의 이벤트이고, 가족 간 친목과 화합의 도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장 탓에 뿔뿔이 흩어진 식구들이 한데 모이는 연례 단합 행사로 기능하고, “사 먹으면 된다”는 자식에게 그래도 어미의 손맛을 먹이고 싶은 마음을 전하는 방법이 된 것이다.
더불어 10여 년 전 엄마의 마음도 가늠할 수 있었다. 수능 날 초조한 마음을 견딜 길이 없던 엄마는 이모에게 늘 얻어오던 김치를 그 해만은 직접 담갔다. 아마 매 교시가 끝나고 터져 나오는 뉴스들을 지켜보지도 꺼버리지도 못한 채 일부러 더 몸을 놀리며 무채를 썰고 절인 배추를 씻고 양념을 버무리고 계셨을 것이다. 김장은 수능 날 어미의 불안한 마음을 한편에 치워 둘 수 있을 만큼 그렇게 고되니까.
대단히 김장에 조예가 깊은 듯 썼지만, 고백하건대 올해 김장 날은 가지 못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운 좋게 비켜갔다고 주변에 말했지만, 사실 조금은 아쉽다. “내 새끼들 왔구나” 하며 우리 부부를 반갑게 맞아 주시는 시외할머니의 거친 손과 갓 버무린 김치에 어르신들과 나눠 먹는 수육과 막걸리를 놓쳤는데 어찌 안타깝지 않을 수 있을까. 여전히 김장은 이 땅의 주부들에게 큰 부담과 수고로움의 아이콘이지만 또 달리 보면 우리들의 김장 문화는 진득한 가족만의 정서가 생길 수 있는 장을 제공해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나저나 이렇게 김장 이야기를 하는 걸 보니 나는 이제 아줌마가 다 되어버렸다. 아무렴 어떤가. 올해 김치만 맛있게 익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