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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외엔 관심 없어… ‘기부 한파’

입력 | 2016-11-24 03:00:00

불황 더 심할때도 쌓이던 온정 ‘뚝’…촛불집회 열리며 연탄기부 급감




 서울 광화문광장 일대에 100만 명(주최 측 추산)이 모여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외친 12일 서울 노원구 백사마을 어르신들의 표정은 유독 어두웠다. 1000여 가구 중 600여 가구가 후원받은 연탄으로 겨울을 나야 하는데 이날 기부단체인 서울연탄은행이 싣고 온 연탄은 420가구에만 전달됐기 때문이다. 이마저도 한 가구가 한 달 사용할 양밖에 안 됐다. 이날 한집에 모여 TV로 촛불집회를 지켜보던 할머니들은 서울연탄은행 허기목 목사의 말을 듣고 ‘최순실 게이트’에 대해 원망을 쏟아냈다.

 허 목사는 “청탁금지법보다 무서운 게 최순실 사태”라고 전했다. 그는 “청탁금지법 시행으로 연탄 기부가 줄어들 것으로 봤지만 실제론 법 시행 직후 별 영향을 주지 않았다. 오히려 촛불집회가 본격화되면서 연탄 기부가 크게 감소했다”고 말했다. 연탄은행에 따르면 연탄 기부가 집중되는 9월∼11월 중순 집계된 연탄은 25만 장. 지난해 같은 기간 45만 장이 들어왔으니 엄청난 감소 폭이다. 고옥자 할머니(70)는 “대통령이 잘못해서 국민들이 화가 나는 바람에 어려운 이웃을 생각할 겨를도 없어졌나 보다”라고 하소연했다.

 비영리단체 모금가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기부금이 필요한 곳은 늘었지만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사회 전반적으로 기부 분위기가 사라지고 있는 탓이다. 모금가들은 올해 모금 환경에 대해 “경제 상황이 좋지 못했을 때보다 모금액이 줄어들 것”이라고 예측했다.

 한국기부문화연구소는 병원과 재단의 모금 담당자 2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 결과를 23일 발표했다. 응답자의 140명(70%)이 “최순실 게이트가 기부에 부정적 영향을 줬다”고 답했다. 청탁금지법(40명·20%)과 경기 침체(20명·10%)보다 훨씬 많았다. 경기 침체로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았어도 몇 년간 개인 기부는 꾸준했다는 게 담당자들의 설명이다. 하지만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관심이 집중되면서 기부에 대한 관심이 크게 줄었다. 개인 기부가 줄어든 이유에 대해 200명 중 90명(45%)이 “국민의 관심사가 촛불집회, 대통령 탄핵 등 최순실 게이트로 쏠려서”라고 답했고, “최순실 게이트로 재단의 기부금 운용에 대한 불신이 커져서”라고 답변한 사람이 86명(43%)이었다. “경제 사정이 좋지 않아서”라는 답변은 24명(12%)이었다.

 서정석 건국대 충주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분노와 연민은 시소 관계인데 현재 국민의 눈과 마음에는 최순실 일가와 이 사태를 불러온 대통령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차 있다. 기부 동기에 있어 경제적 풍요로움보다 정서적 풍요로움이 중요한데 분노가 연민을 억눌러 기부할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최순실 사태는 기업의 기부 감소에도 영향을 줬다. 모금 담당자들은 올해 기업들의 기부가 활발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상당수(160명·80%)가 “최순실 게이트 관련 보도에 가려 크게 홍보되지 않을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답했다. 한국기부문화연구소 비케이 안 소장은 “케이스포츠, 미르재단 때문에 재단에 대해 ‘비리 온상’이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생긴 데다 사회적 관심이 최순실 사태에 집중된 게 기부 감소의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김단비 기자 kubee08@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