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만명 학살’ 37년만에 단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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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써 1979년 크메르루주 정권 붕괴 이후 37년 만에 킬링필드 관련 주요 기소자 9명 중 3명에 대한 단죄가 이뤄졌다. 이들에 앞서 크메르루주 정권 당시 악명 높았던 투올슬렝 수용소(일명 S-21)의 카잉 구에크 에아브 소장(74)은 2012년 최종심에서 1만 명이 넘는 수감자의 고문과 학살을 감독한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누온 체아와 키우 삼판은 1975년 친미 정권을 무너뜨리고 집권한 크메르루주 정권에서 각각 권력 서열 2위와 4위로 핵심 역할을 담당하며 강제이주와 반대세력 처형, 학살 등에 가담했다. 2010년 9월 기소돼 2014년 8월 1심에서 모두 종신형을 선고받았으나 항소해 이날 항소심이 열린 것이다.
이번 판결은 1975∼1979년 자행된 최소 200만 명의 양민 강제이주, 이전 정권의 군인 처형 등 반인륜 범죄에 대한 것이다. 이슬람 참족과 베트남 소수민족 집단학살, 강제결혼 등의 범죄에 대해서는 따로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1975년 들어선 크메르루주 정권은 노동자, 농민의 유토피아를 건설한다는 명분으로 170만∼220만 명의 지식인과 부유층 등을 학살했다. 킬링필드는 당시 숨진 숱한 양민들의 무덤을 지칭하는 말이다.
핵심 전범들은 1979년 크메르루주 정권이 붕괴된 뒤에도 2007년까지 아무 처벌도 받지 않은 채 살았다. 캄보디아 집권 세력이 이들에 대한 처벌 의지를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범재판이 시작된 것은 유엔의 집요한 압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유종 기자 pe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