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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기자의 문학뜨락]문학 생태계의 타성 깨는 투고 문학

입력 | 2016-11-24 03:00:00


 조남주 씨의 소설 ‘82년생 김지영’(민음사)은 제목 그대로 1982년생 김지영 씨 이야기다. ‘김지영’은 1982년에 태어난 여아 중 가장 많이 등록된 이름이라는 작가의 조사에 따라 붙여졌다(기자의 이름이기도 해서 친근한 느낌이다). 소설은 서른네 살 김지영 씨가 여자라는 이유로 겪었던 차별을, 그가 마주한 정신과 의사의 상담 기록 형식으로 풀어낸다.

 ‘82년생 김지영’은 출간 한 달 만에 3쇄를 찍었다. 대부분의 책들이 출간 1, 2주 안에 향후 판매량이 판가름 나는데 이 책은 조금 달랐다. 재쇄는 늦었지만 3쇄는 빨랐다. 뒷심이 있다는 얘기다.

 판매부수 추이 말고도 ‘82년생 김지영’엔 흥미로운 ‘출생의 비밀’이 있다. 이 책은 민음사의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 13번째 책이다. ‘오늘의 젊은 작가’는 500장 분량의 경장편 시리즈다. 이 시리즈는 그간 문예지 ‘세계의문학’ 편집위원들이 등단 작가들에게 청탁해 원고를 받고 ‘세계의문학’에 전재한 뒤, 단행본으로 내는 형식을 취했다. 대부분의 소설은 이렇듯 ‘청탁’을 통해 세상에 나온다.

 그런데 ‘82년생 김지영’은 좀 달랐다. 조남주 씨가 출판사에 투고했다. “메일로 투고되는 소설이 1년에 수백 편이다. 그중에 책으로 낼 만한 좋은 작품은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82년생 김지영’을 봤을 때 감이 왔다.” 출판사는 이 얘기를 들려주면서 “투고라는 형식이 세태소설엔 적절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세태소설이란 세태의 단면을 묘사한 소설이다. 이를 위해선 사회 현상을 민첩하게 포착해 소설화하는 순발력이 필요하다. 당연히 출판도 이슈의 열기가 뜨거울 때 맞춰 이뤄져야 한다. 청탁을 받아 구상을 하고 시간을 들여 글을 쓰는 과정보다 투고된 작품을 검토하고 책을 내는 게 세태소설에 적합하다는 건 이 때문이다. 기존의 문예지 편집위원들이 대개 문학연구자들인 만큼 전통적인 소설 서사방식이나 미학적 가치를 따지는 경우가 많아 세태소설이 나오기 쉽지 않은 구조도 큰 이유다.

 등단한 작가들은 대개 청탁을 받고 글을 써왔지만, 등단 5년 차인 조남주 씨는 먼저 출판사의 문을 두드렸다. 올해 나온 장편 ‘외로움 살해자’(들녘)를 쓴 신인 작가 윤재성 씨는 출판사에 작품을 투고한 뒤 편집자에게 전화를 걸어 원고를 읽었는지 확인했다. 출판사 측은 “글쟁이들이 소심해서인지 출판사에 연락해 원고의 향방을 묻는 이는 드물어서 당황했다”고 털어놨다. 문학 전문 출판사가 아님에도 인지도 낮은 신인 작가의 첫 소설을 출간하는 ‘모험’을 한 데 대해 들녘 출판사는 “당장 많이 팔리지는 않더라도 한국문학 독자들이 주요 문학출판사의 책 뿐 아니라 선택의 폭을 넓힌다는 데 의미를 두고 있다”고 밝혔다. 오늘의 젊은 작가들은 이렇듯 적극적인 모습이다. 이런 움직임은 문학의 관행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다. 기성에 대한 변화가 사회 전체에서 요구되는 이 시기에 문학 생태계 또한 이렇게 변화를 맞고 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