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남주 씨의 소설 ‘82년생 김지영’(민음사)은 제목 그대로 1982년생 김지영 씨 이야기다. ‘김지영’은 1982년에 태어난 여아 중 가장 많이 등록된 이름이라는 작가의 조사에 따라 붙여졌다(기자의 이름이기도 해서 친근한 느낌이다). 소설은 서른네 살 김지영 씨가 여자라는 이유로 겪었던 차별을, 그가 마주한 정신과 의사의 상담 기록 형식으로 풀어낸다.
‘82년생 김지영’은 출간 한 달 만에 3쇄를 찍었다. 대부분의 책들이 출간 1, 2주 안에 향후 판매량이 판가름 나는데 이 책은 조금 달랐다. 재쇄는 늦었지만 3쇄는 빨랐다. 뒷심이 있다는 얘기다.
판매부수 추이 말고도 ‘82년생 김지영’엔 흥미로운 ‘출생의 비밀’이 있다. 이 책은 민음사의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 13번째 책이다. ‘오늘의 젊은 작가’는 500장 분량의 경장편 시리즈다. 이 시리즈는 그간 문예지 ‘세계의문학’ 편집위원들이 등단 작가들에게 청탁해 원고를 받고 ‘세계의문학’에 전재한 뒤, 단행본으로 내는 형식을 취했다. 대부분의 소설은 이렇듯 ‘청탁’을 통해 세상에 나온다.
세태소설이란 세태의 단면을 묘사한 소설이다. 이를 위해선 사회 현상을 민첩하게 포착해 소설화하는 순발력이 필요하다. 당연히 출판도 이슈의 열기가 뜨거울 때 맞춰 이뤄져야 한다. 청탁을 받아 구상을 하고 시간을 들여 글을 쓰는 과정보다 투고된 작품을 검토하고 책을 내는 게 세태소설에 적합하다는 건 이 때문이다. 기존의 문예지 편집위원들이 대개 문학연구자들인 만큼 전통적인 소설 서사방식이나 미학적 가치를 따지는 경우가 많아 세태소설이 나오기 쉽지 않은 구조도 큰 이유다.
등단한 작가들은 대개 청탁을 받고 글을 써왔지만, 등단 5년 차인 조남주 씨는 먼저 출판사의 문을 두드렸다. 올해 나온 장편 ‘외로움 살해자’(들녘)를 쓴 신인 작가 윤재성 씨는 출판사에 작품을 투고한 뒤 편집자에게 전화를 걸어 원고를 읽었는지 확인했다. 출판사 측은 “글쟁이들이 소심해서인지 출판사에 연락해 원고의 향방을 묻는 이는 드물어서 당황했다”고 털어놨다. 문학 전문 출판사가 아님에도 인지도 낮은 신인 작가의 첫 소설을 출간하는 ‘모험’을 한 데 대해 들녘 출판사는 “당장 많이 팔리지는 않더라도 한국문학 독자들이 주요 문학출판사의 책 뿐 아니라 선택의 폭을 넓힌다는 데 의미를 두고 있다”고 밝혔다. 오늘의 젊은 작가들은 이렇듯 적극적인 모습이다. 이런 움직임은 문학의 관행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다. 기성에 대한 변화가 사회 전체에서 요구되는 이 시기에 문학 생태계 또한 이렇게 변화를 맞고 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