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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고미석]영어 디바이드와 한자 격차

입력 | 2016-11-25 03:00:00


 일본 오사카로 여행 갔을 때 일이다. 택시를 잡아타고 행선지를 ‘오사카 캐슬(castle)’이라고 몇 번이나 말해도 기사는 고개만 갸웃거린다. 할 수 없이 ‘城(성)’을 종이에 써서 내밀었더니 단박에 “아! 오사카 조∼”라며 알아듣는다. 기본 소양으로 한자를 알면 같은 한자문화권인 일본이나 중국에 갔을 때 편리하다.

 ▷우리나라 어문정책은 광복 이후 국한문 혼용과 한글 전용으로 오락가락했다. 그래서 초중고교 시절 한자 교육을 받아 한자와 친숙한 세대, ‘한자 문맹’에 가까운 세대로 나뉜다. 2005년 국어기본법이 시행되면서 교과서와 공문서는 한글로 쓰도록 의무화됐고 한자 교육은 필수과목에서 밀려났다. 2012년 이 법이 위헌이라며 학부모 대학교수 등 333명이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어제 초중등 교육과정에서 한자를 선택과목으로 규정한 교육부 고시는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재판관 5명이 합헌, 4명이 위헌 의견을 냈다.

 ▷헌재의 판단이 나왔다고 한자 교육을 둘러싼 힘겨루기가 수그러들 리 없다. 한자 교육 의무화에 거부감을 가진 사람들은 지금처럼 중학교에서 가르쳐도 충분한데 초등학교 시절부터 한자로 인한 학업 스트레스를 안길 이유가 없다고 주장한다. 찬성하는 쪽은 한자는 중국만의 것이 아니라 엄연히 한글과 더불어 나라의 문자인 만큼 한국어 교육을 위해서도 한자 학습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논지를 편다.

 ▷영어 실력이 사회적 신분과 수입을 결정짓는다는 ‘영어 디바이드(영어 격차)’란 말이 한때 유행했다. 시대가 바뀌어 중국이 경제대국으로 부상하면서 중국어가 영어를 대체한 ‘차이니스 디바이드(중국어 격차)’란 말이 생겨났다. 한자 공교육이 늦어지면 저소득층 자녀들만 피해를 본다는 얘기도 나온다. 서구에서도 부유층은 자녀의 한자 교육과 중국어 교육에 관심을 쏟는다. 도널드 트럼프 차기 미국 대통령의 외손녀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에 당나라 시를 줄줄 외우는 것처럼 말이다. 언제 한자를 배워도 ‘한자 디바이드’ 현상이란 말이 안 나오게 공교육이 확실히 책임져야 한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