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이홍길 전남대 명예교수
이홍길 전남대 명예교수가 26일 광주 동구 금남로에서 진행된 5차 촛불집회에 참가해 촛불을 밝히고 있다. 그는 1960년 이승만 대통령 하야를 외친 4·19혁명부터 최근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촛불집회까지 근대사 고비마다 부당함에 맞서 목소리를 낸 시민운동가이자 학자다. 이형주 기자peneye09@donga.com
시민들 사이에서 백발의 노인이 차가운 날씨에 어둠을 밝히는 촛불 한 개를 들고 있었다. 광주의 재야인사인 이홍길 전남대 명예교수(75)였다. 그는 4·19혁명과 전남대 교육지표 사건, 5·18민주화운동에 참여해 3개의 민주유공자 지위를 갖고 있다. 56년간 민주화의 외길을 걸어온 이 교수는 이날 “시민으로서 촛불에 힘을 보태기 위해 참여했다”고 했다. 한국 근대사 고비 때마다 부당함에 맞서 싸워온 사회운동가이자 학자로서 그의 삶과 촛불 민심에 대해 들어봤다.
전남 함평군 나산면에서 농사를 짓던 이 교수의 부모는 광복 직후 좌우익 대립이 격화되자 목포로 이사 갔다. 이 교수는 목포에서 초중학교를 졸업한 뒤 광주고에 진학했다. 그가 민주화운동에 눈을 뜬 것은 광주고 2학년 때였다. 1960년 2월 말 광주 충장로 골목길에 과격단체가 정치깡패 이기붕을 부통령에 당선시키려고 장면 선생(1899∼1966)을 친일파라고 모함하는 전단(삐라)을 붙인 것을 알고 격분했다. 광주고 동창 3명과 백지에 ‘자유당과 이승만 대통령은 학교를 간섭하지 말라’는 내용의 글을 적었다. 자정이 지난 통금시간을 이용해 시내 곳곳에 이승만 정부를 규탄하는 전단을 몰래 붙였다.
이 교수는 시위 이후 수배돼 중학교 동창생 전만길 씨(74·전 동아일보 부국장)와 함께 전남 나주로 피신했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은 그가 광주 4·19혁명 주동자라며 불구속 입건했다.
전남대 사학과에 다니던 1964년 3월 박정희 정권이 한일협정을 진행하려 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학교 후배 박석무 씨(74·다산연구소 이사장) 등과 함께 한일문제연구회를 결성해 학교에서 토론회를 여는 등 6·3항쟁에 참여했다. 한일협정을 반대하던 전남대 학생들은 1964년 5월 27일 박정희 대통령 하야를 외쳤다. 박정희 정권에 대한 하야의 외침은 전국에서 처음이었다. 재야단체와 학생들의 반대에도 계엄령이 선포되고 결국 한일협정은 타결됐다. 그는 한일협정 반대 시위로 불구속 기소됐다.
대학원을 졸업한 뒤 1969년 젊은 나이에 전남대 사학과 교수로 임용됐다. 교수 생활 10년째인 1978년 봄 전남대 국어국문학과 송기숙 교수(81)가 민주선언을 제안했다. 송 교수는 당시 문예지인 창작과비평 서울 사무실에서 유신체제에 반대했다가 해직된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78) 등을 만났다. 이들은 전국 교수 100여 명이 유신체제에 반대하는 선언을 하자고 약속했다.
송 교수는 이후 전남대로 내려와 명노근 교수(1933∼2000)와 이 교수 등 동료 교수들을 끌어모았다. 하지만 전국적으로 교수들이 민주선언을 발표하기 힘든 상황이 되자 전남대 교수 11명 명의로 작성된 성명서를 1978년 6월 27일 외국 언론에 먼저 보냈다. 서슬 퍼런 유신체제에서 교수 11명을 보호하는 최소한의 안전 조치였다. 이 교수 등 11명은 유신체제 교육을 반대하고 민주교육을 실천하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가 모두 해직됐다. 이른바 전남대 교육지표 사건이다.
두 차례나 대통령 하야를 외쳤던 이 교수는 최근 최순실 씨 국정 농단에 대해 들불처럼 번지는 촛불 민심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국민은 박근혜 대통령을 버렸는데 정권은 스스로 그만두는 것을 포기한 상황 같아요. 박 대통령이 행여 신냉전체제에 기대 임기를 채우려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 됩니다. 이렇게 겨울이 가고 봄이 되면 젊은이들의 분노가 폭발할 것 같아요.”
이 교수는 “보수와 진보를 떠나 기득권 세력이 죄의식 없이 행동하는 것이 문제”라며 “보수의 최대 가치는 바로 도덕성인데 대통령은 그런 윤리를 버렸기 때문에 보수도 아니다”고 진단했다. 세상은 4, 5차 혁명을 이야기하는데 대통령은 옛날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박근혜 정부가 최순실 씨와의 공동정권이라고 단언했다. 최 씨가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를 위해 40년간 노력한 것은 정권 창출 이후 엄청난 과실을 따먹기 위한 것이었는데 국민들만 몰랐다고 했다. 마치 조선시대 정조대왕 시절 권력을 휘두르며 스스로 외척이 된 홍국영의 상황이 반복된 것 같다며 혀를 찼다. 탄핵 이후 정국에 대해서도 우려를 나타냈다. 야당이 탄핵 이후 국민의 뜻을 저버리고 각자 유리한 셈법만을 고집한다면 역풍을 맞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의감 없는 윤리나 분노는 모두 거짓입니다. 국민이 드는 촛불은 우리 사회가 다시 시작하는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