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촛불집회 무대 선 가수 양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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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노래하는 가수 양희은. 그는 “굉장히 떨렸는데 함께 불러 주시니 좋았다. 언제든 이런 무대에 다시 서고 싶다”고 했다. KOPA사진공동취재단
26일 밤 서울 광화문광장 무대에서 ‘상록수’ ‘행복의 나라로’ ‘아침이슬’을 부른 가수 양희은(64). 27일 전화로 만난 그는 150만 개의 촛불 앞에 선 감회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1970, 80년대에는 오히려 집회에서 노래해본 적이 없어요. 제가 대학생 때 집회 현장에 노래하러 가면 교수님들이 ‘네가 왜 여기 있느냐!’고 호통치며 막아서서 발걸음을 돌리기 일쑤였죠. 1987년 6월항쟁 때는 결혼과 신혼여행이 겹쳐 참여하지 못했고요.”
양희은은 인터뷰 중 여러 차례 마음에 있는 노래 빚을 언급했다. “어떤 면에선 사람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는 사람이죠. 사람들이 (노래의) 불씨를 계속 되살려 주고, 되살려 주고 했으니까. 늘 되돌려 드려야겠다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노래 빚을 잔뜩 지고 사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걸 갚아야 눈을 감고 떠날 수 있죠.”
그의 노래가 집회에서 애창곡으로 불리고 있지만 정작 그가 집회 무대에 선 것은 드물었다. 2008년 촛불집회 때 처음 집회 무대에 올랐고, 8년이 흐른 뒤 다시 여기 왔다.
‘저 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
26일 집회 참가자들 다수는 그의 출연을 예상치 못했다. 어디선가 튀어나온 낭랑한 목소리, ‘상록수’의 첫 소절은 담담하되 선언적이었다. ‘…비바람 맞고 눈보라 쳐도/온누리 끝까지 맘껏 푸르다’, 광화문광장에 내리던 첫눈처럼 들이닥친 노래. 하지만 그 순간 양희은의 호흡은 가빴고 컨디션은 온전하지 않았다.
서울역에서 다시 지하철로 이동해 경복궁역 출구부터 인파를 헤치고 경보로 광화문 무대 뒤에 닿으니 공연 4분 전이었다. “딱 물 한 모금 마시고 호흡도 정리하지 못한 채 무대에 섰네요.”
선곡 배경을 물으니 물음으로 받아친다. “그럼 ‘하얀 목련’을 하겠어요, ‘한계령’을 하겠어요? 이 시점에 사람들이 원하는 게 ‘상록수’ ‘아침이슬’ 아니겠어요.”
그는 한대수의 ‘행복의 나라로’에 대해서는 “다들 왜 살겠느냐. ‘행복하자/아프지 말고’ 하는 자이언티의 ‘양화대교’ 가사처럼, 그런 거 아니겠냐”고 덧붙였다.
‘박근혜 퇴진’의 구호 속에 이 노래들을 토해낸 소회는 남다를 것 같다. 그래도 그는 “듣는 분들, 받아들이는 분들 마음이 있을 테니 내가 말을 보태는 것은 아닌 것 같다”며 말을 아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