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친박(친박근혜)계 핵심 중진 의원들은 어제 박근혜 대통령에게 개헌을 통한 임기 단축을 수용하는 ‘명예로운 퇴진’을 선언해 달라고 청와대에 직접 건의했다. 박 대통령은 일주일 전 사표를 낸 김현웅 법무부 장관과 최재경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 가운데 최 수석의 사표는 보류했으나 사의가 완강한 김 장관의 사표는 수리했다. 당정청의 보루에 균열이 생기면서 대통령이 그야말로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몰렸다.
박 대통령 덕에 금배지를 달고 정치생명을 유지하며 실세 권력을 누려온 친박 핵심들이 ‘명예 퇴진’을 논의한 것은 현실 직시일 수도 있으나 다른 한편으로 후안무치의 극치다. 최순실이란 일개 사인(私人)에게 휘둘려 국정을 망치는 대통령에게 말 한마디 못하다 탄핵 정국에 들어서니 자기들 살 궁리를 하는 모양새다.
전직 국회의장 등 원로들이 그제 박 대통령에게 내년 4월까지 하야할 것을 제안한 데다 친박 핵심들까지 등을 돌린다면 박 대통령은 고립무원 처지다. 박 대통령이 퇴진의 로드맵을 제시하고, 국회는 국정을 운영할 책임총리에 합의해 탄핵이라는 불행한 사태 없이 국정공백을 최소화하는 것이 바람직한 정국수습 해법이긴 하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퇴진이나 국정 2선 후퇴를 거부했기 때문에 헌법에 따라 탄핵 절차에 돌입한 것이다.
박 대통령과 최순실의 통화를 녹음한 정호성 전 제1부속비서관의 파일을 들은 수사 검사들은 일일이 최순실의 의견을 물어보는 대통령의 육성을 듣고 분노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중에 녹음 파일의 내용을 두고 루머까지 확산되는 마당에 검찰이 녹취록을 공개 못할 이유가 없다. 국회의 탄핵 발의와 표결에 앞서 국민도 최순실의 국정 농단을 조장한 대통령의 육성을 듣고 판단할 권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