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두번째 亞챔스리그 우승 이끈 최강희 감독
인심 좋은 ‘봉동 이장님’ 최강희 전북 감독이 29일 서울의 한 호텔 로비에서 산타클로스 인형과 나란히 앉아 애칭인 ‘봉동 이장’처럼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 보이고 있다. 전북의 클럽하우스가 전북 완주군 봉동읍에 있어 이 같은 애칭이 붙었다.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29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난 최강희 전북 감독(57)은 이틀 전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 결승전에서 우승하던 순간을 떠올리며 “2011년 준우승의 한을 풀어 이제야 팬들 앞에 체면이 조금 서겠구나 싶었다”며 웃었다.
최 감독은 올해 선수단 첫 소집이던 1월 4일 선수들에게 시즌 목표를 밝혔다. “K리그 3연패도 걸려 있지만 그보다는 ACL 우승이 우선이다.” K리그 3연패도 역대 두 번밖에 나오지 않은 대단한 기록인데 왜 그렇게 ACL 우승을 강조했을까. 최 감독은 2011년 ACL 준우승 때 얘기를 꺼냈다. “당시 넋이 나간 팬들, 눈물을 흘리던 팬들의 표정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때 결심했다. 앞으로 목표는 무조건 ACL 우승이라고.”
2006년에 이어 ACL에서 두 차례 우승한 첫 사령탑이 된 최 감독은 “앞으로 K리그 팀이 ACL에서 우승하기는 점점 힘들어질 것”이라고 했다. 오일머니를 앞세운 중동 팀들의 전력이 만만찮고, 1년에 수천억 원씩 쓰는 중국 슈퍼리그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2012년까지 한국과 일본, 중동 팀이 나눠 갖던 우승컵이 2013년부터 중국 클럽에 돌아가기 시작했다. 2014년에는 호주 클럽도 우승 팀에 이름을 올렸다. 올해 우승 상금이 작년의 두 배인 300만 달러(약 35억 원)로 늘어나는 등 ACL의 위상이 갈수록 높아지면서 각국 클럽이 ACL에 쏟아붓는 공력도 커졌다. 이런 점 때문에 최 감독은 종종 선수들에게 “너희들은 행복한 줄 알아야 한다”고 얘기한다. “ACL 출전이 목표인 팀이 대부분이다. 평생 ACL에 한 번도 못 나가는 선수도 많다. 하지만 전북은 항상 ACL 우승이 목표인 팀이다.”
전북에서 올해 스카우트의 심판 매수 사건이 불거졌다. 이 때문에 승점 감점의 징계도 받았다. 하지만 최 감독은 이 일이 선수들을 더 결속시키는 계기가 된 것으로 봤다. 심판 매수 사건은 전북이 멜버른 빅토리(호주)와의 ACL 16강 2차전을 하루 앞둔 5월 23일에 알려졌다. 구단 내부에서는 동요가 있었지만 선수들은 달랐다. “멜버른과 경기를 하는데, 선수들이 몸을 던지고 상대 발이 올라오는데 머리를 들이밀고 하면서 정말 몸을 사리지 않고 뛰더라.” 전북은 멜버른을 2-1로 꺾고 8강에 올랐다. 이날 패했으면 전북은 탈락이었다. 선수들에게는 똘똘 뭉치는 계기가 됐을지 몰라도 팀을 지휘하는 최 감독은 이 일로 잠을 잘 못 잘 정도로 스트레스가 심했다고 한다. 시간이 꽤 지난 일이고 최 감독이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팀을 비웠을 때의 일이라고는 해도 있어선 안 될 일이었다. 이 사건으로 전북은 승점 9점이 깎이면서 결국 서울에 우승을 내줘 리그 3연패에 실패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오히려 잘된 일이 아닌가 싶다. 리그 우승을 놓쳤지만 아쉬움보다는 홀가분한 마음이 더 컸다.” 최 감독은 “선수들은 리그 우승도 놓치기 싫었을 것이다. 선수라면 그게 당연하다. 하지만 우리가 우승을 했으면 심판 매수 사건이 다시 거론되면서 잡음이 나왔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전북의 ACL 우승 후 최 감독의 지도력이 집중 조명을 받으면서 중국 슈퍼리그가 최 감독에게 눈독을 들인다는 보도가 계속 나오고 있다. 최 감독은 실제 올 시즌 도중 중국 슈퍼리그 팀으로부터 감독직을 제안받았다. “중국 팀들의 영입 시도에 관한 뉴스가 많이 나온다”고 하자 최 감독은 “안 간다니까”라고 짧게 대답했다. “감독 1, 2년 차라면 돈을 보고 움직였을지 몰라도 지금 나는 그럴 때도 아니고….”
최 감독은 28일 아시아축구연맹(AFC)으로부터 ‘올해의 감독’으로 선정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12월 1일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서 열리는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 최 감독은 귀국한 지 이틀 만인 30일 다시 아부다비로 출국한다.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