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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이텍시트’?… 유럽, 伊 개헌투표 앞두고 초긴장

입력 | 2016-12-01 03:00:00

상원의원 100명으로 축소 개헌안 부결땐 렌치 사퇴… 내년초 조기총선
‘유로존 탈퇴’ 오성운동 집권 가능성… “현실화되면 EU 붕괴할 것”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황당한 이야기였지만 이젠 달라졌다. 바퀴는 천천히 굴러가기 시작했다. 유럽연합(EU)은 붕괴할 것이고 이탈리아는 유로존을 떠날 것이다.”

 4일 실시되는 이탈리아 개헌 국민투표를 앞두고 유럽 전역이 초긴장 상태다. 미국 SEI투자은행 짐 스미길 디렉터가 지난달 29일 영국 인디펜던트 인터뷰에서 “이번 투표가 EU 붕괴의 시발점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중도 좌파 마테오 렌치가 총리직을 걸고 하는 국민투표에서 개헌안이 부결될 경우 EU 탈퇴를 주장하는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 정당이 부상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렇게 되면 내년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의 대선과 총선에서 반(反)EU 정당 열풍으로 이어져 EU 붕괴의 나비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

 중도 좌파인 민주당의 렌치 총리(사진)는 각종 개혁 법안이 상원에서 번번이 부결되자 상원의원을 315명에서 100명으로 줄이는 개헌안을 마련했다. 그러나 막대한 국가부채와 높은 실업률로 이번 국민투표가 정부의 경제 실정에 대한 심판으로 성격이 바뀌면서 개헌안도 부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 경우 렌치 총리는 물러나고 내년 초 실시되는 조기 총선에서는 지지율 30%로 1위를 달리는 극좌 포퓰리즘 정당인 오성운동이 집권할 가능성이 높다. 오성운동은 유로존 탈퇴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EU 회원국 가운데 경제규모 3위인 이탈리아의 유로존 탈퇴는 EU에도 치명타다. 유로존 탈퇴가 결정되더라도 지난해 6월 통과된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처럼 지난한 협상 과정이 예정돼 있어 경제는 살얼음판을 걸을 것으로 보인다. 개헌안이 부결되면 한창 진행 중인 부실은행 개혁 작업이 중단돼 “8개 은행이 도산할 수 있다”(파이낸셜타임스) “은행 구제금융에만 400억 유로(약 50조 원)가 들어갈 것”(텔레그래프)이라는 비관적인 분석이 쏟아지고 있다. 이 때문에 장클로드 융커 EU집행위원장은 지난달 27일 “이탈리아의 개헌은 좋은 것”이라며 렌치 지원 사격에 나섰다.

 반면 오성운동의 창시자인 베페 그릴로는 “EU 옹호론자들은 그리스를 경제 위기에 빠뜨린 사람들로 이탈리아의 복지도 무너뜨리는 사람들”이라고 맹공을 퍼붓고 있다. 극우 성향의 북부동맹 마테오 살비니 대표도 “렌치가 유럽에 이탈리아를 팔아넘기려고 한다”며 개헌안 부결에 앞장서고 있다.

 극우와 극좌가 한목소리로 개헌안을 부결시키기 위해 총력전을 펴는 사이 정계 은퇴를 시사했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까지 정계 복귀에 시동을 걸고 있다. 올해 6월 심장수술을 받은 뒤 “공산당이 집권하기 전에는 정치를 하지 않겠다”고 했던 그는 “4일 이후 정치 재개 여부를 결정하겠다”며 말을 바꿨다. 그는 2014년 상원 권한 축소에 찬성했지만 지금은 “국민투표가 통과되면 정부의 힘이 커져 권위주의로 회귀할 것”이라며 개헌안 부결 쪽에 섰다. 자신이 주도하는 중도우파 정당 ‘전진이탈리아’를 통해 렌치 사임 이후 의회 권력을 행사하겠다는 뜻이다.

 렌치는 지난달 29일 “가슴이 아닌 머리로 투표해 달라”는 성명을 내고 숨은 표를 끌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 캠페인을 이끌었던 짐 메시나도 40만 유로(약 5억 원)를 들여 영입했다.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