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정국]비상시국위 43명중 31명 긴급설문
반면 탄핵을 추진한다면 국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되더라도 헌법재판소가 언제, 어떤 결정을 내릴지 알 수 없는 만큼 국정 혼란은 더 가중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상당수 비박 진영 의원들도 탄핵보다 조기 퇴진을 선호하고 있다. 김무성 전 대표와 가까운 강석호 의원은 30일 기자들을 만나 “박 대통령이 (국회 결정에 따라) 그만두겠다고 밝혔는데 여야가 협의도 하지 않고 무작정 탄핵을 추진한다면 보수층이 가만히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 상당수 비박, 야당의 일방적 탄핵 처리 반대
여야 협상이 이뤄지지 않으면 9일 탄핵안을 처리해야 한다는 의견에는 26명(83.9%)이 동의했다. 다만 이들이 모두 탄핵안에 찬성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탄핵안을 본회의에 상정하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 ‘찬성하겠다’는 14명(45.2%)으로 절반에 못 미쳤다. 2명은 박 대통령의 담화 이후 탄핵안 반대로 돌아섰다. 15명(48.4%)은 판단을 유보하거나 응답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당초 비박 진영은 탄핵 찬성 의원이 40명을 넘었다고 공언했다. 여기에 야당 소속 또는 야권 성향 의원 171명과 새누리당을 탈당한 김용태 의원 등을 합하면 탄핵 가결 정족수(200명)를 충분히 넘길 수 있다고 봤다. 하지만 본보 설문조사 결과 기존에 탄핵 찬성 의견을 낸 비박 진영 의원 가운데 적지 않은 수가 ‘결정 유보’로 태도를 바꾸면서 탄핵안 가결은 불투명해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비상시국위원회 대변인인 황영철 의원은 이날 “9일 탄핵안이 상정된다면 가결 정족수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면서도 “(박 대통령의) 담화 발표 이후 (탄핵 찬성의) 확장성은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야권이 끝내 협상 테이블에 앉지 않으면 비박 진영이 추가 제안을 내놓을 가능성도 있다. 박 대통령에게 먼저 퇴진 시기를 정확히 못 박아 달라고 요구한 뒤 이를 수용하지 않으면 탄핵안 처리에 참여할 수 있다는 얘기다.
본보 설문에 응한 한 의원은 “여야 합의가 안 되더라도 새누리당 단독으로 박 대통령에게 명확한 퇴진 시기를 요구하고, 박 대통령이 이를 수용하면 야당의 탄핵안에 반대하겠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주류 측이 내년 4월 퇴진을 당론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도 ‘탄핵 열차’에 올라타려는 비주류를 붙잡기 위해서다.
○ ‘탄핵 내전(內戰)’ 종결되나
박 대통령의 조기 퇴진을 두고 새누리당 주류-비주류가 의견 통일을 이루더라도 당내 갈등은 쉽게 봉합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친박계 지도부가 물러나고 비상대책위원장을 추대하는 또 다른 복병이 잠복해 있기 때문이다. 당초 친박계와 비주류 6인 중진협의체는 1일 복수의 비대위원장 후보를 최종 확정하기로 했다. 하지만 비주류 측 멤버인 김재경 의원은 앞으로 중진협의체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유승민 의원 등 비주류 일각에선 6인 중진협의체의 대표성을 문제 삼고 있다. 비주류에선 김형오 전 국회의장과 유 의원 등을 비대위원장 후보로 추천할 예정이지만 친박계가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도 높지 않다.
본보 설문조사에서 비대위 구성 및 활동 상황을 지켜본 뒤 탈당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응답은 14명(45.2%)에 달했다. 비대위 전환 문제가 분당(分黨) 사태의 분수령인 셈이다. 반면 16명(51.6%)은 탈당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개헌을 두고는 ‘탄핵과 무관하게 즉각 논의해야 한다’는 응답(17명·54.9%)이 가장 많았다. 이어 13명(41.9%)은 ‘탄핵안 처리 뒤 대선 전 논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새 헌법하에 대선을 치러야 한다는 주장인 것이다. 내홍이 깊은 여권이 탄핵과 개헌의 실타래를 함께 풀어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재명 egija@donga.com·홍수영·손효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