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 통일항아리에 봉투를 넣고 있는 이명박 전 대통령. 이 모금 운동은 곧 잊혀졌다. 동아일보DB
주성하 기자
최 씨가 대북정책을 좌우한 확실한 증거는 없다. 청와대는 통일대박이 최 씨가 아닌 박근혜 대통령의 아이디어라고 주장한다. 사실 그게 더 끔찍하다. 지금 보면 정말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했을 수도 있겠구나 싶어서이다. 개인적으론 과거 통일대박론을 계속 비판했던 것이 허무하다. 어쩌면 알아듣지 못할 말을 혼자만 했던 것 아닐까 해서.
박 대통령이 통일을 가볍게 생각했다 쳐도 오로지 개인 탓으로만 돌려 비웃고 싶지는 않다. 우리 사회의 통일 논의 모습을 보면 박 대통령만 탓할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남쪽에 와서 통일 문제를 다룬 수많은 저서와 논문을 봤지만 고차방정식을 풀기 위해 고심한 인상적인 글은 보지 못했다. 학계의 접근법이 단순해지면 다음 정권의 대북정책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장밋빛 일색의 단순한 구호를 외치는 쉬운 접근법에만 매달릴 수 있다.
통일 정책이 더 이상 실패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번 사건을 통일 문제를 다루는 학계가 진지하게 성찰하는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다. 현재 대다수의 통일 논리들은 “끊어진 핏줄을 다시 잇는 민족의 최대 숙원이며, 초기엔 어렵겠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번영할 것”이라는 식으로 비슷비슷하다. 결혼에 빗대면 “남녀 사이에 결혼은 운명이니 일단 한집에 사는 게 중요하고, 그 다음에 지지고 볶고 애도 낳고 키우다 보면 나중에는 해피엔딩에 이를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런데 현실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모진 부모를 만나 자란 뒤 가치관과 성격이 판이한 배우자와 멋모르고 결혼하면 해피엔딩은 고사하고 끊임없이 대판 싸우다 헤어질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 지금 당장 북한이 붕괴되면 어쩌면 내전까지 각오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결혼 이야기에 덧붙인다면 나는 통일 이후 북한 남성들이 결혼을 할 수 있을지조차 의문을 갖고 있다. 이동의 자유를 얻은 북한 여성들의 처지에서 생각하면 간단하다. 이웃 중국은 북한에 비해선 훨씬 선진국이다. 그 선진국에 성비 불균형으로 짝을 찾을 수 없는 총각만 3000만 명이 산다. 북한 여성이 중국 남성과 결혼하면 생활수준이 곧바로 중국처럼 올라간다. 거기에 중국은 남자가 밥도 해주고 빨래도 해주고 아이까지 봐주는 신세계다. 10년 뒤쯤이면 쉽게 통역해 주는 기기도 나와 언어의 장벽이 없어질 가능성도 높다. 중국 남성도 중국 여성보다 훨씬 순종적이고 가정적인 북한 여성을 매력적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날이 오면 가난한 데다 가부장적인 북한 남성의 운명은 어찌 될까.
이런 상상을 하는 사람을 남쪽에선 본 적이 없다. 그런데 통일은 이러한, 해답은 찾기 힘들되 풀지 못하면 통일 자체를 후회하게 만드는 문제로 가득하다. 통일은 이런 점까지 다 따지며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거두절미하고 통일의 효과부터 말해왔다. 통일하면 모든 것이 다 순풍에 돛단배처럼 잘될 것처럼….
앞으론 통일에 고소한 참기름만 잔뜩 바르는 정치인은 믿지 말자. 쓰디쓴 현실도 기다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쏙 빼는 사람은 머리가 비었거나 정직하지 않다는 의미로 받아들이자. 통일은 그것을 준비하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 과정을 건너뛴 결과들은 대개 좋지 못했다.
결혼할 때도 성격과 가치관이 전혀 다른 배우자를 얻어서 잘 살려면 계속 만나면서 무슨 일이든 함께하며 맞추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러다가 내가 상대를 감당할 확신이 들면 결혼하는 것이고, 아직은 아니다 싶으면 미루고, 정 안 되겠다 싶으면 결혼하지 않으면 된다.
“그동안 왜 그랬는지 다 알면서….”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