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동용 정치부 기자
우리나라 헌법기관 가운데 대통령과 국회의원만 국민이 직접 뽑았다. 대통령이라는 ‘선출권력’이 궐위됐을 때 헌법 71조는 권한대행 체제를 규정해 놓고 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직을 물러났을 때 ‘최순실 게이트’의 방조자로 낙인찍힌 황교안 국무총리와 이하 국무위원들을 국민이 얼마나 신뢰할지는 미지수다. 특히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 처리되면 국정 운영을 전임할 황 권한대행 내각이 국가의 정치 경제 외교·안보에 닥친 위기의 삼각파도를 뚫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황 총리를 대신할 국회 추천 총리 제안을 거부하고, 임종룡 경제부총리 후보자 인준도 물 건너보낸 것을 우려하던 기자에게 한 야당 의원은 “단지 몇 개월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 짧은 기간에 국회가 추천한 책임총리나 새 경제부총리가 할 수 있는 큰일은 그리 많지 않다는 의미였다.
그럼에도 국회가 손을 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신뢰받지 못하는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에 흔들리는 국정 운영을 맡기고 조기 대선에만 몰두하는 것이 국회 역할의 전부여서는 안 된다. 당장 2일이나 9일 국회가 탄핵안을 통과시킨 뒤 헌재 결정이 예상되는 2∼6개월 동안 국회가 무엇을 할지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조기 대선 이후 새 정권이 지금의 적폐를 일소하기 위해서는 뭘 준비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생전에 “정치인은 국민의 손을 잡고 반 발짝만 앞서 나가라”라고 말했다고 한다. 지금의 야권은 ‘최순실 정국’에서 국민과 함께 반 발짝 뒤에서 따라왔다. 야권 지도자들도 늘 “촛불 민심을 따라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 지지율을 4%에 머물게 하는 분노의 민심을 감히 어떻게 끌고 나갈 수 있느냐는 뜻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언제까지 뒤만 따를 수는 없다. 내년 상반기 대선을 치른 다음 날 오전 새 대통령은 취임선서를 해야 한다. 그에게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기간도 주어지지 않는다. 크고 작은 ‘최순실’들이 그의 주변에서 암약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기도 쉽지 않다. 또 ‘5년의 반복’이 시작되는 것이 싫다면 이제 정치가 무언가를 준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