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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하고 명랑한 시어들의 잔치

입력 | 2016-12-01 03:00:00

황인숙 시인 10년 만의 새 시집 ‘못다 한 사랑이 너무 많아서’




황인숙 시인은 10년 만에 낸 신작 시집에서 “앞으로 시를 끝내주게 쓰는 날이 남았다!”는 유쾌한 ‘작가의 말’을 밝혔다. 동아일보DB

 ‘리스본행 야간열차’ 이후 10년 만이다. 황인숙 시인(58)의 새 시집 ‘못다 한 사랑이 너무 많아서’(사진)는 오랜만이어서 반갑고, 긴 시간을 지나도 수그러들지 않는 명랑함으로 인해 또 반갑다. 글쓰기가 게을렀느냐 하면 전혀 아니다. 90여 편의 시가 묶인 두툼한 시집은 시인이 그간 시작(詩作)에 얼마나 치열했는지를 물성(物性)으로 증명한다. 최근 3년여는 동아일보에 ‘행복한 시 읽기’를 연재하면서 독자들에게 좋은 시편들을 소개하기도 했다. 그만큼 시에 부지런했다.

 ‘생계가 나를 부산스럽게 만들지라도/그래서 슬퍼하거나 노하더라도/호시탐탐/석양에 신경 좀 쓰고 살으리랏다’(‘황색시간’에서)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와 고려가요 ‘청산별곡’을 버무린 ‘황색시간’에서 시인은 생활에 부대끼는 현대인들이 잠시 그 자리에 멈춰 서도록 한다. 그는 현대인들을 꾸짖거나 딱해하는 대신에 ‘호시탐탐 석양에 신경 좀 쓰고 살라’고 명랑하게 말한다.

 이런 명랑함은 또 어떤가. 쉰을 한참 넘긴 시인은 인생 후반기마저 밝고 환하게 조명한다. 삶 전체로 보면 저물어가는 시간에 접어들었지만 시인은 앞으로, 곧게 나아가리라고 노래한다. ‘지금은, 내가 살아갈/가장 적은 나이 (…) 내 척추는 아주 곧고/생각 또한 그렇다 (아마도)/앞으로!/앞으로!/앞으로, 앞으로!’(‘송년회’에서)

 길고양이들을 돌보는 ‘캣맘’으로 유명한 시인이다. 고양이에 대한 시인의 애정은 시편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길고양이 밥 주기’라는 제목의 시에서 그는 ‘길고양이를 집에 들이는 게/죽음의 문턱에서 데려오는 일이/더 이상 아니게 될 그날까지’ 캣맘의 역할을 하리라고 다짐한다.

 고양이에 대한 시인의 깊은 애착의 이유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시인의 시적 대답은 이렇다. ‘담장 위 고양이 한 마리,/울타리 안 풍경이군!/내가 내다보는 줄 알았는데/들여다보고 있었네’(‘고양이가 있는 풍경사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고양이를 시인이 돌보는 줄 알았는데, 실은 시인이 고양이의 눈에 빚져 풍경을 볼 수 있었다는 얘기다. 그렇게 얻어진 낯선 시선을 갖고 시를 써올 수 있었음은 물론이다.

김지영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