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숙 시인 10년 만의 새 시집 ‘못다 한 사랑이 너무 많아서’
황인숙 시인은 10년 만에 낸 신작 시집에서 “앞으로 시를 끝내주게 쓰는 날이 남았다!”는 유쾌한 ‘작가의 말’을 밝혔다. 동아일보DB
‘생계가 나를 부산스럽게 만들지라도/그래서 슬퍼하거나 노하더라도/호시탐탐/석양에 신경 좀 쓰고 살으리랏다’(‘황색시간’에서)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와 고려가요 ‘청산별곡’을 버무린 ‘황색시간’에서 시인은 생활에 부대끼는 현대인들이 잠시 그 자리에 멈춰 서도록 한다. 그는 현대인들을 꾸짖거나 딱해하는 대신에 ‘호시탐탐 석양에 신경 좀 쓰고 살라’고 명랑하게 말한다.
길고양이들을 돌보는 ‘캣맘’으로 유명한 시인이다. 고양이에 대한 시인의 애정은 시편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길고양이 밥 주기’라는 제목의 시에서 그는 ‘길고양이를 집에 들이는 게/죽음의 문턱에서 데려오는 일이/더 이상 아니게 될 그날까지’ 캣맘의 역할을 하리라고 다짐한다.
고양이에 대한 시인의 깊은 애착의 이유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시인의 시적 대답은 이렇다. ‘담장 위 고양이 한 마리,/울타리 안 풍경이군!/내가 내다보는 줄 알았는데/들여다보고 있었네’(‘고양이가 있는 풍경사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고양이를 시인이 돌보는 줄 알았는데, 실은 시인이 고양이의 눈에 빚져 풍경을 볼 수 있었다는 얘기다. 그렇게 얻어진 낯선 시선을 갖고 시를 써올 수 있었음은 물론이다.
김지영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