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린다 론스탯의 ‘Blue Bayou’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분노는 표출의 대상이 필요합니다. 그 대상이 없으면 정말 미쳐버리죠. 저와 저의 동료들은 아주 좋은 표적입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와 간호사는 “너는 내 돈을 부당하게 빼앗아간다. 도움이 안 된다. 사기를 친다!”라고 분노하기에 딱 적당한 대상이죠.
이럴 땐 휴식이 필요합니다. 어디를 봐도 부정적인 자극뿐일 때에는 도피가 필요하죠. 더 바랄 수 있다면 그 충만한 부정적 감정을 상쇄해줄 수 있는 긍정적인 감정이 필요합니다.
최근 대부분의 미국인도 정말 짜증나고 황당한 대선을 겪으며 극심한 피로와 분노를 겪었습니다. 그래서 미국 정부는 현대 정신의학을 이끌어가고 있는 석학들에게 자문했죠.
이 석학들이 내놓은 조언은 TV를 끄고, 정치 이야기를 하지 말고, 마음 맞는 사람들과 좋아하는 이야기와 활동을 하라는, 정말 누구나 할 수 있는 조언이었죠. 그런데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정치적인 인간들이 들으면 몹시 분노할 이야기죠. 현실 외면이라고 말이죠. 그래도 보통 사람들은, 분노도 좀 쉬어야 합니다.
그래서 좋은 음악 하나 밥상에 올려드립니다. 휴식은 두 귀만으로도 가능하니까요. 저는 린다 론스탯 누나의 사진을 중1 때 사촌형 집에서 처음 봤습니다. ‘최신 히트팝송’이란 노래책이었는데, 영어 가사를 한글로 ‘로울링, 롤링, 롤링 라이크 더 리버∼!’라고 써 놓은 책이었죠.
그 사진에서 린다 누나는 단발머리로 이마를 가리고 그 큰 눈으로 “난 아무것도 몰라요∼!”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당장 보호본능을 느꼈죠. 나중에 가서야 보호본능을 유발하는 여자의 해악을 알게 되었지만, 이미 늦었죠. 남자애가 그런 슈퍼 히어로가 되는 환상만 품지 않을 수 있다면 비교적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 노래의 베이스를 잘 들어보세요. 느긋한 파도가 저 멀리서 “쑤와아∼!” 하며 천천히 밀려오는 리듬입니다. 엄마가 아기를 안고 흔들며 잠재워줄 때의 리듬이죠. 마음이 복잡할 때에는, 가끔은 이런 세상모르고 살아가게 해주는 노래도 필요합니다. 그래야 지치지 않을 수 있고, 다시 현실로 돌아와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판단에 근거한 언행으로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