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더러 왜 조국을 사랑하지 않느냐고 하던데, 조국도 나를 사랑하지 않았거든.―한국이 싫어서(장강명·민음사·2015) 》
올해 세 번째 대입 수능을 치른 K에게서 얼마 전 연락을 받았다. 입시학원 아르바이트를 할 때 담당하던 학생이다. 주말마다 지방에서 서울을 오가며 열심히 준비했지만 ‘불수능’(난도가 낮아 변별력이 없는 ‘물수능’의 반대말로 어려운 수능을 의미) 탓에 성적은 더 떨어졌다고 했다. 그는 “말 한 마리만 있으면 대학가는 ‘헬조선’인데 유독 나한테만 엄격히 구는 것 같다”라며 “차라리 한국을 뜨고 싶다”라고 말했다.
소설 속 주인공 ‘계나’는 행복해질 거란 희망이 없다며 한국을 떠난다. 그녀는 물려받을 재산도 없고, 월급은 늘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남자 친구는 취업 준비생이라 수억 원씩 드는 결혼은 언감생심이었다. 결혼한다 해도 아등바등 살아갈 생각을 하면 고구마 100개를 먹은 것처럼 답답했다. 이런 한국에서 살다간 결국 자신의 할머니처럼 지하철에서 폐지를 줍게 될 거라는 확신만 커져 갔다.
책을 읽어 가다 계나가 “조국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데 왜 내가 조국을 사랑해야 하느냐”라고 물을 때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계나처럼 최근 젊은 세대는 ‘한국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여전히 한국에선 돈과 든든한 배경만 있으면 대학은 물론이고 정부까지 쥐락펴락할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말 한 마리만 있었으면 대학에 갈 수 있었을 것이라는 K의 얘기가 농담으로만 들리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강성휘 기자 yol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