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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칙정권 심판’ 진보-보수 똘똘 뭉쳐… 이젠 촛불이 정치다

입력 | 2016-12-05 03:00:00

[6차 촛불집회]




 《 추워지는 날씨 속에서도 갈수록 커지는 촛불집회는 비폭력 평화집회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수많은 국민은 왜 촛불을 들고 자발적으로 도심으로 나가는가. 정치 사회학자들도 주목할 만한 연구 대상으로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절대다수의 시민이 공분할 수밖에 없는 이번 이슈 자체가 다양한 계층의 시민을 광장(廣場)으로 불러냈다고 분석했다. 그리고 민주주의의 축제로 여겨지는 이번 집회에 한국 정치의 부끄러운 현실과 앞으로의 희망이 모두 담겨 있다는 진단도 내놓았다. 》


 

① 이슈의 힘
“이렇게 허약한 사회에 살았나” 가슴에 불 댕겨

○ “대통령과 유권자의 대결, 국민 정서의 문제”


할머니-수녀-어린이들까지 촛불 동참 3일 서울 광화문광장 등 전국 곳곳에서 열린 6차 촛불집회 때도 남녀노소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이날 주최 측 추산 232만 명이 전국 촛불집회에 참가한 가운데 부모의 손을 잡고 나온 어린이부터 수녀, 스님 등 종교인까지 다양한 참가자가 눈길을 끌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대전 / 제주=뉴스1

 “집회 때문에 장사는 안 되죠. 그렇지만 온 국민의 관심사이고 나도 공감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준비할 거예요.”

 3일 열린 6차 촛불집회에서 40만 원가량을 들여 약재까지 넣고 끓였다는 뜨거운 ‘보이차’를 시민들에게 나눠 주던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한식당 주인의 얘기다. 생업을 잠시 접어두고 적극 동참하게 하는 집회. 전문가들은 기존 집회와는 대결의 구도가 전혀 다르다는 점을 이 집회의 가장 큰 원동력으로 꼽는다.

 박상훈 정치발전소학교장은 “대부분의 정치 사안은 여와 야, 보수와 진보 같은 구분선이 있기 마련인데 지금은 국가와 시민 혹은 대통령과 유권자와 같은 구도가 펼쳐져 있다는 점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여러 이익집단이 각자의 입장을 내세우며 동등한 차원에서 다투는 것이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이 ‘반칙’을 썼다고 판단한 시민들이 광장으로 쏟아져 나왔다는 진단이다. 시민 절대다수가 동의할 수 있는 이슈 그 자체가 거대한 촛불 행렬의 밑바탕인 셈이다.

 이런 배경 속에서 이성보다 감정이 시민들의 가슴에 불을 붙였다는 분석도 나온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번 집회는 국민 정서에 관한 문제”라며 “우리가 이렇게 허약한 사회에 살았나 하는 배신감과 두려움 같은 감정은 이성적 문제보다 훨씬 심각하고 극복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② 재미의 힘 공감이 주는 즐거움… ‘광장 문화’의 재발견

○ “재미 더한 집회로 자연스레 비폭력 이룩”


 배신감 같은 부정적 감정이 큰 영향을 미쳤음에도 6차례에 걸친 대규모 집회는 모두 비폭력 평화집회로 진행됐다. 세계가 주목하는 부분이다.

 박희봉 중앙대 공공인재학부 교수는 “집회 그 자체에 목적이 있다는 점과 시민들이 의미에 재미를 더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의 응원전이 보여주는 것처럼 응원 혹은 정치적 의견 표출이라는 목적과 더불어 광장에서 대중과 함께하는 즐거움을 느끼는 그 자체를 시민들이 즐기고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 인근에서 경찰과 대치하는 집회의 ‘최전방’ 대신 다양한 문화 공연과 자유발언이 진행되는 무대 주변에 시민들이 집중되고 있는 현장 상황 역시 이런 점을 잘 보여준다. 온몸에 전구를 주렁주렁 매달고 3일 집회에 참가한 김대립 씨(29)는 “시민들한테 집회가 딱딱한 게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화려한 의상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재미를 더한 집회가 축제처럼 진행되는 양상은 자연스럽게 비폭력 평화집회 정착이라는 결과로도 이어졌다. 신율 교수는 “질서정연한 집회의 배경에는 참가자들이 박 대통령보다 도덕적, 이성적 측면에서 더 우위에 있다는 걸 보여주려는 심리도 있다”고 설명했다.

 

③ 참여의 힘 “정치는 시민이 움직이는 것” 적극적 의견 개진

○ “‘정치 활용’ 깨달은 시민들… ‘저질 정치’ 입증”


 10월 말부터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은 일관되게 박 대통령 퇴진을 외쳐 왔다. 그러면서 박 대통령 탄핵을 머뭇거리는 정치권을 앞에서 이끌어가는 모습을 보여줬다. 3일 집회에서는 새누리당을 직접적으로 비난하고 엇갈린 목소리를 내고 있는 야당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이와 관련해 집회의 순수성을 앞세우며 정치권을 배제하기도 하던 시민들이 정치를 활용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는 분석이 나온다. 박상훈 학교장은 “8년 전 광우병 문제로 일어난 촛불집회에서는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인을 배제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며 “시간이 흐르면서 이제는 정치의 역할과 시민의 역할이 함께 가야 한다는 인식의 변화가 생긴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최근 시민들은 탄핵 표결과 관련해 여야 국회의원들에게 직접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기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한국 정치의 후진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지적도 나온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대의제 민주주의가 얼마나 역할을 못했으면 이런 기초적인 문제로 시민들이 거리로 나왔겠느냐”며 “민주주의의 발전일 수 있지만 한국 정치가 그동안 얼마나 후진적이었는지를 보여주는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당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200만 명에 이르는 시민이 거리에 나와 고함을 쳐서 의사를 전달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김도형 dodo@donga.com·권기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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