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테로 렌치 이탈리아 총리가 추진했던 개헌안이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 정당들의 반대로 국민투표에서 부결돼 유럽연합(EU)이 불확실성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친(親)EU 성향의 렌치 총리가 개헌안 부결 책임을 지고 즉각 사임하겠다고 밝혀 '이텍시트(Itexit·이탈리아의 EU 탈퇴)의 가능성이 높아졌다.
중도 좌파인 민주당 렌치 총리가 정치의 고비용 저효율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상원의원 수를 줄이는 내용을 뼈대로 마련한 개헌안은 4일(현지시간)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반대 59.1%, 찬성 40.9%로 부결됐다.
렌치 총리는 "내가 졌다. 5일 내각회의를 소집하고 곧바로 대통령에게 사직서를 제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의 사퇴는 2014년 2월 역사상 최연소 총리로 취임한 지 2년9개월 만이다.
올해 6월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를 낳은 국가주의와 고립주의라는 포퓰리즘 열풍은 1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에 이어 이탈리아까지 집어 삼키면서 유럽 전역으로 도미노 현상을 일으킬 우려가 확산되 있다. 내년 이탈리아 조기 총선에서는 반(反)EU의 선봉에 선 극좌 정당 '오성운동'의 집권이 유력하다. 지지율 3위를 달리는 극우성향의 '북부동맹'도 유로존 탈퇴를 주장하고 있다. 이번 일로 내년에 잇따라 실시되는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의 대선과 총선에서도 반EU 성향의 포퓰리즘 정당들이 힘을 받게 됐다.
EU 3위 규모의 경제대국인 이탈리아의 혼란으로 유로화 가치는 20개월여 만에 최저치로 곤두박질쳤다. 부실한 이탈리아 은행의 연쇄도산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같은 날 치러진 오스트리아 대선에서는 '난민의 아들'로 불리는 무소속 알렉산더 판 데어 벨렌 후보가 53.3%를 얻어 '오스트리아의 트럼프' 노르베르트 호퍼(46.7%)를 이겼다. 이로써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최초의 극우 대통령 출현은 무산됐다.
파리=동정민특파원 ditt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