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영일·경제부
그로부터 예닐곱 시간이 지났을 무렵 ‘박근혜 대통령 스캔들이 한국 경제지표를 위협한다’는 내용의 기사가 인터넷 등에 오르기 시작했다. 근거자료는 기재부가 소개했던 바로 그 보고서였다. 언론들이 뒤늦게 무디스가 작성한 영어 원문을 입수했고, 정부 자료에 없는 내용들을 확인하면서 시작된 일이었다.
기재부는 보도자료에 ‘최순실 게이트’ 관련한 내용을 담지 않은 이유에 대해 “대만보다 우월한 한국의 강점을 설명하는 무디스 보고서의 의도를 중점적으로 전달했을 뿐이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 같은 기재부의 설명을 곧이곧대로 믿기에는 석연찮은 구석이 너무 많다.
최근 최순실 게이트로 인한 국정 마비 현상에 대해 무디스는 물론이고 OECD,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기관들이 연이어 한국경제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는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현실화한 것이다. 외부의 경고음이 울리면 실상을 솔직히 국민에게 알리고 제대로 대비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하지만 정부는 당장의 비난을 피하고자 외부의 경고를 숨기고 축소하는 듯한 모습만 보인다.
19년 전 외환위기 때에도 국제기관들은 끊임없이 한국경제에 경고음을 울렸다. 하지만 정책 당국은 애써 이를 숨기고 외면했다. 그 결과로 많은 국민이 일자리를 잃고 소득이 곤두박질치는 희생을 치러야 했다. 더 이상 정부의 무책임과 꼼수로 국민이 희생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손영일·경제부 scud20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