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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탄핵정국, 대통령도 국회도 法 위에 있을 수 없다

입력 | 2016-12-06 00:00:00




 한광옥 대통령비서실장이 어제 ‘최순실 국정 농단 게이트’ 국정조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곧 (조기 퇴진 날짜) 결단을 내릴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허원제 정무수석비서관은 “대통령은 새누리당 당론(4월 퇴진, 6월 대선) 결정을 보고받았고 당원의 한 사람으로서 당론을 수용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사실상 조기 사퇴를 대리 선언한 셈이다. 설사 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 4차 대국민 담화를 통해 내년 4월 또는 그 이전의 날짜에 사퇴하겠다고 선언한다 해도 야권이 논의 자체를 거부하고 있어 9일 국회의 탄핵소추안 표결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대통령이 조기 퇴진 일정을 밝히고 2선으로 후퇴한다는 이른바 ‘질서 있는 퇴진’ 주장은 그동안 혼란만 빚었다. 야권이 제안하고 대통령이 수용했으나 무산된 국회 추천 총리에서부터 새누리당 친박(친박근혜)계가 국가 원로들의 제안을 받는 식으로 건의해 나온 ‘진퇴와 임기를 국회에 맡긴다’는 박 대통령의 3차 대국민 담화까지 다 그랬다. 국회 추천 총리나 대통령의 사퇴 시한에 대해 대선을 앞두고 입장이 서로 크게 다른 여야 정당들이 합의한다는 것 자체가 현실적이지 않다. 합의한다 해도 대통령이 어디까지 2선 후퇴를 할 수 있는지 헌법적으로 풀기 어려운 문제가 남는다.

 박 대통령이 금명간 조기 퇴진 날짜를 밝히는 것도 같은 오류의 반복일 뿐이다. 표결에서 캐스팅보트를 쥔 새누리당 비박(비박근혜)계의 의사에 영향을 미칠 목적으로 퇴진 날짜를 밝힐 가능성이 없지 않으나, 그래서 표결이 부결된다고 한들 박 대통령이 약속을 지키려면 위헌적 상황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본란에서 누차 강조했듯이 탄핵만이 누구도 이견을 제기할 수 없는 법적 퇴진 절차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최근 한 언론 인터뷰에서 “민주주의 체제에서 헌법을 제대로 시행하는 경험을 우리가 가져야 한다. 온정주의적인 한국 문화에서 적당히 정치적으로 넘어가면 안 된다. 어떤 결과가 나와도 좋으니 국회와 정당들이 정식으로 헌법에 있는 탄핵 절차를 제대로 해보라”고 주장했다. ‘질서 있는 퇴진’은 좋게 말하면 온정주의, 나쁘게 말하면 적당주의에 기대 대통령 탄핵의 대가를 치러야 할 친박 세력이 자신들의 소멸을 모면하기 위한 정치적 꼼수일 수 있다.

 박 대통령이 탄핵 위기에 직면한 것은 법을 위반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박 대통령을 법의 이름으로 탄핵하려는 국회도 법 위에 있을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탄핵소추가 부결되면 국민이 끌어낼 것”이라고 한 발언은 부적절하다. 민주주의에서 표결에 참여한다는 것은 가결되든 부결되든 결과에 대한 승복을 전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은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말고 헌법이 정한 퇴진 절차를 밟고 그 결과에 군말 없이 순응하는 것이 한국의 법치와 민주주의를 한 단계 진전시키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