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이슈&진단/석동현]정략과 대선 입김빼고 진상과 책임 밝혀야

입력 | 2016-12-06 03:00:00


석동현 전 서울동부지검장·변호사

 국정 농단을 불러온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하여 국회는 지난달 30일부터 최장 90일까지 가능한 국정조사에 들어갔다. 특히 청문회는 핵심 당사자, 증인 등의 진술을 공개적 육성으로 듣게 하는 게 원칙이다. 주요 증인의 진술은 TV와 인터넷으로 생중계된다. 1988년의 5공 청문회를 능가하는 최대 규모의 청문회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특검 수사도 사실상 시작되었다. 4인의 특검보와 별도로 검사 20명(최대)이 투입되는 이번 특검은 그간 가장 파견검사 수가 많았던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인 시절 BBK 의혹 특검(검사 10명)의 두 배에 해당하는 규모이다.

 또한 국회는 대통령 탄핵 절차에 들어갔다. 헌법 조문이나 교과서에만 나오는 줄 알았던 대통령 탄핵 절차를 두 번이나 목도하게 되는 셈이다. 이 기이한 경험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 심판 당시 헌법재판소는 대통령의 탄핵은 헌법이나 법률에 위배한 때에 한하고 정치적 무능력이나 정책 결정상의 잘못 등 직책 수행의 성실 여부는 그 사유가 안 된다고 판시한 바 있다. 오늘날 국민들이 보는 박근혜 대통령의 과오의 주된 부분은 불통, 권력의 사유화 등 통치 역량 부족이 드러난 데 따른 정서적 거부감이 더 크고, 형법을 위반했는지 여부나 그것이 정말 탄핵받아 마땅한 정도인지는 아직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고 보는 견해도 적지 않다.

 여하간 국회가 만약 탄핵소추까지 의결한다면 국정조사, 특검 수사, 탄핵 절차의 3각 파도가 한꺼번에 몰아치는 초유의 상황이 될 것인데 전선(戰線)은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특검 시작으로 검찰의 수사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현재 검찰은 특검에도 불구하고 김종 전 차관이나 장시호 등의 잔여 수사는 계속 해나가겠다는 입장이고, 무엇보다 조만간에 검찰이 기소한 게이트 연루자들에 대한 법원 재판이 시작된다.

 탄핵 심판의 최종 결정은 헌법재판소가 단지 서류 재판이 아닌 구두 변론 등 엄격한 심리를 거쳐 내리게 된다. 대통령은 탄핵이 진행될 경우 법정에서 탄핵 사유도 따지고 자기방어를 위한 주장도 할 것이 분명하다. 그 대상이나 범위 등이 약간 다를 뿐 결국 대통령을 겨냥한 조사나 수사, 재판, 탄핵 심판 등 책임 추궁 절차 네 가지 또는 다섯 가지가 동시에 돌아가는 셈이 된다.

 국가수반치고 장관, 참모들을 놔둔 채 엉뚱하게 비선 조직이나 외부 민간인에게 지엄한 권한을 일임해버린 사례가 세상천지에 또 있을지 의문이지만, 그렇다고 국민이 선출한 임기제 대통령에 대해 이렇게 4종, 5종의 절차를 동시 가동하여 책임 추궁을 하는 나라도 세상에는 드물지 않나 싶다.

 역대 정부에서도 동일한 사안에 대해 국정조사, 탄핵 심판, 특검 수사 등 3종 세트가 모두 진행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김대중 정부 당시 ‘옷 로비 의혹’ 사건이 있지만 그때도 3종 세트가 동시에 진행된 것은 아니었다. 노무현 정부 당시 대통령 측근 비리, 이명박 정부 당시 BBK 의혹 사건도 이번처럼 동시에 진행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어쩔 것인가. 어차피 현실이 그렇다면, 정말 제대로 해야 한다. 국정조사나 특검 수사, 탄핵 심판 절차를 각각 기능에 맞게 구분해서 진행해야 하고, 한 가지 사안으로 같은 사람을 이 절차와 저 절차에서 중복으로 따져 국민의 피로감을 가중시켜서는 곤란하다. 이와 함께 정치적인 분풀이나 격이 떨어지는 일이 없도록 최대한 정교하게 진행해야 할 것이다.

 특히 국정조사만큼은 전대미문의 사태를 다루는 만큼 과거의 국정조사 모습과 달라야 한다. 과거 수차례의 국회 국정조사는 증인에 대한 감정적 화풀이나 망신 주기식 질문, TV 화면을 의식한 정치성 말잔치에 그쳤을 뿐 정말 국민들이 알고 싶은 비리나 의혹의 진상을 제대로 규명한 사례는 거의 없었다.

 야당이 차기 집권 욕심에 나라가 결딴이 나든 말든 형사법적 범죄 행위나 정무적 과오, 정치적 무능을 분별함 없이 마구잡이로 몰아친다거나 정파적 이익의 집착, 소모적 논쟁 등으로 국정조사 무용론이 되풀이되게 해서는 곤란하다. 그럴 경우 국회, 정치권의 무능에 대해 국민의 더 큰 불신과 분노가 쏟아질 것을 각오해야 한다.

 박영수 특검도 검찰이 미처 밝혀내지 못한 진상을 낱낱이 밝히겠다는 불퇴전의 각오가 필요하다. 대통령 또한 퇴진 문제와 별개로 국민들의 실망에 사죄하는 의미에서라도 특검 수사에 사심 없이 협조해야 할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특히 이번 사태는 대통령 선거 국면과 직접 맞물려 있기에 선의로 출발한 특검이나 국정조사, 탄핵이 대선 우위 확보를 위한 정략에 휘둘릴 우려가 크다. 대선이 가까워지면 수사를 중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올 수 있는 만큼 신속한 대처가 필요하다. 이번 사태는 또 국정 공백이나 정책의 단절로 나라를 되돌릴 수 없는 위기에 몰아놓을 수도 있다. 책임자나 당사자 모두 수렁에 빠진 나라를 구한다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석동현 전 서울동부지검장·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