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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수들 일제히 “대가성 없었다”… 특검 앞두고 뇌물죄 방어막

입력 | 2016-12-07 03:00:00

[대기업 총수 청문회]재단 모금 강제성 우회 인정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된 재벌 총수들은 6일 한목소리로 “대가를 바라고 돈을 낸 게 아니다”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이에 따라 뇌물죄 성립의 전제 조건인 ‘대가성’을 놓고 특검의 수사 과정에서도 팽팽한 줄다리기가 예상된다.

 이날 국회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 농단 의혹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재벌 총수들은 “청와대의 요청을 현실적으로 거절하기 힘들었다”면서 기금 출연의 강제성은 일부 인정하면서도 사면, 경영 특혜, 세무조사 회피 등 대가를 기대하진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여야 의원들로부터 집중적으로 질문을 받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삼성은 단 한 번도 뭘 바란다든지, 반대급부를 바라면서 출연하거나 지원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최태원 SK 회장도 재단 출연이 자발적이었느냐는 질의를 받고 “기업별로 할당을 받은 만큼 낸 것으로, 대가성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출연한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기업 입장에서는 정부 정책에 따를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각 기업이 실제로 공익 차원에서 돈을 냈을 가능성도 있지만 총수들이 대가성을 한사코 부인한 것은 형법 130조의 ‘제3자 뇌물제공’ 혐의를 피하기 위해 준비한 답변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제3자 뇌물죄에 따르면 ‘공무원 또는 중재인이 그 직무에 관하여 부정한 청탁을 받고 제3자에게 뇌물을 공여하게 하거나 공여를 요구 또는 약속한 때’ 처벌토록 규정하고 있다. 재벌 총수들을 독대한 박근혜 대통령과 안종범 전 대통령정책조정수석 등의 행위에 ‘제3자 뇌물죄’가 적용되면 재벌 총수들 역시 뇌물 공여자로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다만 뇌물죄가 인정되기 위해선 ‘대가성’ 또는 ‘부정한 청탁’이 있었는지가 핵심이다.

 이 때문에 의원들은 시종 “뭔가 바라고 돈을 낸 것 아니냐”고 추궁했지만 총수들은 끝까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특히 이 부회장은 삼성이 지난해 최순실 씨가 독일에 설립한 코레스포츠(현 비덱스포츠)에 35억 원 상당을 송금한 것에 대해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는 말만 반복했을 뿐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지 않았다.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자칫 ‘대가성’으로 연결될 경우 관련자들이 뇌물죄 처벌 대상이 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박 대통령 측과 기업 간에 이뤄진 일련의 의사소통 과정에서 암묵적 청탁이 이뤄진 것으로 봐야 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결국 이번 국정조사에서 풀지 못한 재벌들의 기금 출연 이유는 특검이 풀어야 할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박영수 특검은 최근 “재단 기금 문제는 본질을 봐야 한다. 대기업들이 거액의 돈을 내게 된 과정이 과연 무엇인지, 거기에 대통령의 역할이 작용한 게 아닌지를 봐야 한다”며 뇌물 혐의를 수사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내비쳤다.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 과정에 관한 수사는 검찰에서 이미 상당 부분 진척돼 있다.

  특검의 첫 번째 수사 대상은 두 재단에 돈을 낸 기업들이 될 것으로 보인다. ‘비선 실세’ 최순실 씨 측을 직접 지원한 정황이 드러난 삼성그룹과 추가 출연금을 냈다가 되돌려 받은 롯데그룹, 최 씨 소유 회사에 광고를 몰아준 현대자동차그룹 등이 뇌물 혐의를 받는 주요 대상들이다.

길진균 leon@donga.com·배석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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