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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최우열]내 안의 ‘안종범’

입력 | 2016-12-07 03:00:00


최우열 사회부 기자

 안종범은 소탈했다. 2012년 19대 비례대표 국회의원 때 처음 만난 안종범 전 대통령정책조정수석비서관은 영락없는 대학 교수였다. “최 기자” “도 기자”가 아닌 학생을 부르듯 기자들 이름을 부르던 그는 밥을 먹으면서는 재정학 강의를 하는 선생님이 됐다. 정치인의 반말엔 호불호가 갈리지만 사소한 질문에도 정성껏 설명하려는 그의 태도 때문에 누구도 거부감을 가지지 않았다.

 안종범은 부지런했다. 청와대에 경제수석으로 들어간 뒤엔 더 했다. “그와 통화를 하려면 밤 10시까지 기다려야 했고 점심 약속은 늘 12시 30분이 지나야 시작됐다. 항상 ‘회의가 길어졌다’며 자리에 앉았다. 저녁 자리 역시 9시가 되면 황급히 자리를 떴다.” 청와대 출입기자의 푸념이다. 공보 업무에 대한 부지런함 역시 홍보수석을 제외하면 그가 일등이었기에 이해했다.

 안종범은 시장주의자였다. “조세정책을 통해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유지하되 경제에 미치는 왜곡을 최소화하고 소득 재분배에 있어서 합리성을 유지해야 한다.” 그가 2010년 쓴 ‘저출산·고령화 시대의 재정정책 과제’의 일부다. 신고전학파 경제학의 중심 위스콘신대 박사답게 작은 정부와 균형재정, 세율인하의 철학을 고스란히 담았다.

 그런데 ‘최순실 게이트’ 검찰의 공소장에 나온 안종범은 대체 누군가. ‘VIP의 뜻’을 내세우며 KT에 낙하산을 내리꽂고 멀쩡한 광고회사를 강탈하려 했다. 현대자동차의 납품회사까지 깨알같이 지정해줬다. 소탈함도, 부지런함도, 시장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신고전학파의 정신도 없었다. 경제학자 안종범이 아니라 1960, 70년대 개발독재시대 ‘남산의 부장’(중앙정보부장)이었다.

 안 전 수석은 검찰에서 “최순실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민원, 청탁한 것들인 줄은 몰랐다”면서 “대통령의 지시를 이행했을 뿐”이라고 진술했다. 이에 안 전 수석과 함께 당과 대선캠프에서 일했던 인사들은 “안 전 수석이 박 대통령에게 단 한 번이라도 ‘이건 좀 이상한데요’라고 말했더라면, 과연 대통령이 최순실의 말을 계속 들었을까”라고 아쉬워했다. 그러면서도 “나라면 과연 그럴 수 있었을까” 반문했다.

 비단 청와대뿐이 아니다. 크고 작은 정부 기관, 기업 등 공사(公私) 조직에선 지금 이 시간에도 끊임없이 지시가 내려가고 의사 결정이 이뤄진다. 상사의 지시를 받은 부하는 ‘닥치고 수행’할 것인지 작은 의견 개진이라도 할 것인지, 선택의 기로에 선다. ‘아무 생각 없이 움직이면 평안이 오리라’란 유혹은 계속되겠지만 원칙과 기준을 세우면 명백하다. 상사를 바라볼 것인지, 조직을 바라볼 것인지. 상사는 유한하지만 조직은 영원하며, 대통령은 유한하지만 나라는 영원하다.

 이런 원칙과 기준은 시장과 국가, 각 조직과 직무 영역에서 지향하는 철학이 머리와 몸에 배어야 세워지는 것이지, 위스콘신대 등에서 배워 온 갖은 지식으로 정립되는 게 아니다. ‘내 안의 안종범’은 언제 어디서든 ‘VIP 관심 사안’이라며 불쑥 튀어나올 만큼 강력하기 때문이다.
 
최우열 사회부 기자 dns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