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균 논설위원
“목소리까지 갖춘 貴相”
신기원이 한 신문 인터뷰에서 관상을 극찬한 것이 2013년 9월이다. 이후 관가에서는 “황 장관은 차기 총리감”이란 ‘믿거나, 말거나’ 하마평이 돌았다. 그러나 2015년 초 이완구 전 충남지사가 국무총리에 지명되자 총리설은 묻히는 듯했다. 하지만 그해 4월 이 총리가 ‘성완종 리스트’에 연루돼 낙마한 뒤 그가 총리에 오르자 “역시 관상이…”라는 말이 회자됐다. 9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 가결이 유력해지면서 그가 대통령권한대행을 맡을 공산이 커지자 다시 관상 얘기가 돈다.
일각에선 탄핵이 가결되면 여야 합의로 새 총리를 만들어 권한대행을 바꿔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그러나 그 경우 황교안 권한대행이 사실상 새로운 권한대행을 임명하는 헌법적 모순에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기실 작금의 여야는 새로운 총리를 합의해낼 능력도 없다. 야당 일각에선 새로운 실세 총리보다 만만한 황 권한대행을 세워 국정을 쥐락펴락하는 것이 차기 대선에 유리하다는 계산도 한다. 그러나 이래선 이미 한 달여의 국정 공백으로 도탄에 빠진 민생만 결딴난다. 대통령중심제인 현행 헌법체계에선 대통령권한대행이 중심이 돼야 국정이 돌아가게 돼 있다.
황 총리는 권한대행이 되면 박 대통령이 송두리째 망가뜨린 법치를 살리는 데 주력해야 한다. 그러려면 탄핵 가결 이후 이어질 특검과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과정에서 엄정 중립을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최순실이 ‘박근혜 인치(人治)’의 배후였다면 우병우는 ‘집행자’였다. 그럼에도 청문회 출석요구서나 동행명령장을 수령하지 않는 방법으로 출석을 피하고 있다. ‘법률 미꾸라지’로 불리는 그를 단죄할 수 없다면 한국은 법치주의 국가라고 할 수 없다.
권한대행이 국정 중심 돼야
“진정한 민주주의는 광장에서 국왕의 목을 매단 뒤에 싹튼다”는 말이 있다. 과거 왕정이던 유럽 국가들은 대개 이런 과정을 거쳤다. 오늘 우리 사회는 이걸 평화적으로 해내느라 산통(産痛)을 겪고 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광장의 민심으로 나라를 이끌 순 없다. 법치주의에 대한 국민의 믿음이 살아나야 정치를 정치권에 맡길 수 있다. 헌정질서를 부정한 통진당 해산의 주역인 황 총리가 그 역할을 했으면 한다. 더 이상 ‘이게 나라냐’ 소리가 안 나와야 대한민국이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