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위기 때 일본이 한국 돕는 건 역사적 빚을 갚게 해주는 장치… 부끄럽거나 자존심 상할 것 없다
한일 과거사 해결 미완성이나 양국 미래 막아서도 안 될 일
우리에게 도전은 중국의 浮上… 미국만 의존 말고 일본 주시하라
천영우 객원논설위원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 아산정책연구원 고문
정보는 아무리 많아도 모자라기 마련이고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이다. 우리의 대북 정보수단을 총동원해도 필요한 정보의 10분의 1도 확보하기 어렵다. 북한의 핵미사일을 막아내기 위해 아무리 많은 정밀타격 자산을 갖추고 물샐틈없는 다층적 미사일 방어체계를 구축하더라도 북한의 군사 동향을 제때 탐지하지 못하면 소용없다.
우리 군의 치명적 취약점은 정보·감시·정찰(ISR) 능력의 부족이다. 33개국과 군사정보보호협정을 체결하고 있으나 우리에게 유용한 정보를 수집할 능력을 갖추고 이를 공유할 의지가 있는 나라는 미국과 일본뿐이다. 북한의 군사동향을 감시할 정찰위성 1개도 아쉬운 판에 일본은 5개나 운용하고 있다. 우리가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정찰위성 5기를 포함한 일본의 우수한 정보자산을 활용할 길이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항일독립투쟁과 반일(反日)이 아직도 대한민국의 국가 정체성을 규정하고 친일의 낙인이 정치적 사형선고로 여겨지는 풍토다. 이 속에서 과거사 청산을 거부하고 독도 영유권까지 주장하는 일본과 안보협력을 추진하려면 만만치 않은 저항과 역풍을 각오해야 한다. 한일관계의 미래를 위해 과거사 해결 노력은 결코 소홀히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과거의 트라우마가 한일관계의 미래를 지배하고 국익을 가로막는 상황을 무한정 방치하는 것도 무책임한 일이다.
국민 정서의 벽을 넘어 한일 간 안보협력을 확대해 나가야 할 가장 확실한 근거는 양국 간 안보 이해관계의 공통성에 있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로 한일 양국만큼 직접적인 위협을 받는 나라가 없고 중국의 부상과 힘을 이용한 현상 변경도 양국 모두에 엄중한 중장기적 도전이다. 한반도에 대한 안보 위협은 언제나 동북아의 패권을 장악한 나라에서 나온다는 역사적 사실을 망각하면 안 된다. 패권 유지에 전략적 요충인 한반도를 지배하거나 적대세력의 영향권에 들어가는 것을 막는 것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1세기 전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지역 패권을 장악한 데서 우리 민족의 불행이 시작됐듯이 21세기의 도전은 중국의 부상에서 올 것이다. 중국이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막아낼 우리의 주권조차 부정하는 행태는 중국 중심의 패권적 질서가 우리에게 끼칠 폐해의 서막에 불과하다.
일본이 안보법제를 개정하고 국방력 증강을 위해 아무리 발버둥쳐도 예측 가능한 미래에 중국을 제치고 패권세력으로 부활할 가능성은 고사하고 중국과의 군사력 격차를 줄일 방법도 없다. 일본이 독자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능력이 없고 미국과의 동맹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지속되는 한 한국에 위협이 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동북아 전략지형의 재편 속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위험회피와 생존전략은 역내 세력균형 유지에 베팅하는 것이다. 전략적 균형이 패권세력의 횡포를 억제하고 우리에게 가장 유리한 입지와 운신의 공간을 확보해주기 때문이다. 최후의 균형자로서 미국의 역할에 우리의 운명을 맡길 수는 없다.
천영우 객원논설위원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 아산정책연구원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