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실 ‘권한대행 매뉴얼’ 작성… 황교안 총리가 주목하는 12년전 ‘고건의 63일’은?
고 전 총리는 2013년 회고록 ‘국정은 소통이더라’에서 당시 맡았던 대통령 권한대행 시절을 소개했다. 2004년 3월 12일 노 전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에서 의결되기 직전부터 고 전 총리는 첫 번째 업무로 ‘국방’을 챙겼다. 고 전 총리는 탄핵안 의결 전 당시 유보선 국방부 차관에게 전화를 걸어 ‘전군 지휘경계령’을 내리도록 했다. 혹시 모를 북한의 도발에 대비해 혼란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취지였다. 황 총리도 당시 전례에 비춰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시 첫 번째 업무로 철저한 국방 대비태세를 갖추라는 지시를 내릴 것으로 보인다.
고 전 총리는 이어 외교통상부 장관에게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를 비롯해 한국 주재 각국 대사에게 “외교, 안보, 경제 정책에 변화가 없다”는 내용을 알리라고 지시했다. 이어 국내 치안 안정을 위해 전국 경찰의 경계태세 강화를 지시했다. 황 총리 역시 탄핵안이 가결되면 이 같은 수순을 밟을 것으로 전망된다.
당시 사례에 비춰 볼 때 황 총리도 청와대 방문은 최대한 자제하되 주로 정부서울청사에서 대행 체제를 수행할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 역시 고 전 총리의 전례에 따라 황 총리도 불참할 것으로 예상된다.
고 전 총리는 “(대통령 권한대행일 때) 몸 낮춘 행보를 선택했다. 직무가 정지됐다고 하더라도 노 대통령은 청와대 관저에 머물고 있다. 불필요한 긴장 관계를 만들 필요는 없었다”고 했다. 황 총리 역시 박 대통령을 고려해 잡음이 불거질 수 있는 행동은 철저히 삼갈 가능성이 높다.
국무총리실은 박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에 대비해 8일 ‘대통령 권한대행 매뉴얼’을 작성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제는 12년 전과 올해는 정치 상황이 다르다는 점이다. 당시 탄핵안 가결은 전격적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고 전 총리는 우선 외교안보를 챙기며 국민 불안을 해소하는 데 가장 큰 역점을 뒀다. 올해는 야권이 탄핵 이후 황 총리 대행 체제를 인정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혼란이 더 커질 수 있다. 황 총리 역시 ‘낮은 자세’로 안정적인 국정 운영에 초점을 맞추되 여야의 협력을 어떻게 이끌어낼 것인지가 관건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강경석 기자 cool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