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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D]“아직 선도 제대로 못 그리는데…”

입력 | 2016-12-09 13:42:00

‘재야 일러스트 고수를 찾아라~!’ ④그림은





김형우 기자 free217@donga.com


본명 김은애. 일러스트 작가들 사이에서는 ‘그림은’으로 통한다. 영어 작가명은 ‘Painter Eun’(화가 은). 본명보다 작가명이 더 유명하다. 작가명에 담긴 의미가 뭘까?

“‘그림쟁이’에서 사람을 낮추는 의미의 쟁이를 빼고, 내 이름의 ‘은’자를 따서 그림은으로 지었다. ‘그림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이라는 중의적인 의미도 있고. 처음에는 인터넷에서 ‘그림은’으로 검색하면 다른 의미의 검색만 잔뜩 떠서 작가명을 바꿔야하나 고민스러웠다. 그런데 많은 분이 그대로 쓰는 것이 좋은 것 같다고 해서 쓰다 보니 지금까지 사용한다.”

무명일 때와는 달리 요즘에는 인터넷 포탈사이트에서 검색하면 쉽게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알려졌다. 큰 대회는 아니지만 국악누리 표지 그림 공모전에 당선되고, 네이버 ‘도전포스트’전에서 ‘설레는 신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단행본과 대기업 제품, 잡지광고 일러스트를 여러 편 그렸다. 그동안 그의 경력을 보면 꽤 오랜 기간 그림을 그려온 작가처럼 느껴진다.

하지는 김씨는 그림을 시작한 지 고작 4~5년밖에 안 되는, 30대 초반의 ‘늦깎이’ 작가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 미술시간 이외에는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따로 그림을 접해본 적이 없다. 대학 때도 건축학과에서 패션디자인학과으로 과를 바꾸면서 4년 동안 받은 미술수업은 3과목에 그쳤다. 그런 그가 뒤늦게 미술계에 뛰어든 이유는 뭘까?

“대학 졸업 후 뭘 할지 고민이 많았다. 웹 에이전시 웹 디자인, 게임회사 폰트 개발, 문구회사 제품 디자인 등 이것저것 많이 해봤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원하는 것을 하기보다는 생활에 급급했던 것 같다. 사실 졸업할 때 북 아트에 관심이 많았지만, 늦은 나이에 그림을 시작하기가 쉽지 않았다. 부모님 반대도 심했다. 돌고 돌아 결국 그림을 시작했다. 내 감정을 표출하고 싶었다. 책 표지부터 글과 그림까지 ‘내 아이에게 선물해 줄 책’을 직접 만들어서 책장을 가득 채워주고 싶었다. 그렇게 그림을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채 자라지 못한 어른(어른 아이)의 이야기를 담은 ‘Alone’ (2011~ ) 시리즈. 끊임없이 삶을 함께하고 싶은 사람을 찾으려는 갈구와 기다림을 그렸다.




-그림에 소질이 좀 있나 보다.


“그렇지는 않다. 아직 선 하나 제대로 그리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러다보니 작품 그릴 때 다른 작가들보다 오래 걸린다. 작품 하나 그릴 때 요즘은 좀 빨라져서 빠르면 3일 아니면 1주일 정도 걸리지만, 예전에는 한 달 걸릴 때도 있었다. 오늘 괜찮다고 생각한 그림이 내일 마음에 든다는 보장이 없다. 내가 내 그림에 속을 때가 많아 좀 더 시간을 두고 작업을 하는 편이다. 또 그림에 내 생각을 어떻게 담아낼까 고민이 많다. 그러다보니 담아내고자 하는 이야기에 따라 그림체가 바뀔 때가 많다. 정규적인 미술 교육을 받거나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좋아해서 그린 사람이 아니어서 아직도 많이 미숙한 것 같다.”

-그래도 나름의 그림체가 있을 것 같은데.

“아픔을 소재로 작업할 때가 많은데, 내게 와 닿았던 무거움의 무게만큼,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편이다. 그림을 그리는 건 내가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다른 사람도 내 그림을 보고 자신을 직면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그린다. 그러다보니 내 단점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경우가 있다.”

-단점이 뭐라고 생각하는가?


“쉽게 잘 넘어지고 부서지고 잘 일어나지 못하는 나약함? 하하.”

정제되지 않은 서툰 마음을 담은 ‘문득 아픈 날에’ 시리즈. 이별의 아픔, 남겨지다. leave (2014) / 나에게 기대어 나를 위로하다. oneself comfort (2015)/ 많은 관계에서 벗어나 현실에서 멀어져 혼자 있고 싶었던 separation (2015)



-그림 소재는 주로 어디에서 찾나?


“거의 100% 나의 이야기를 담는다. 가상의 그림은 별로 없다. 사람들은 저마다 마음속에 누군가와 닮은꼴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 이야기이지만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일수도 있다는 생각 말이다. 그런 그림이기에 어떻게 담아낼까 고민을 많이 한다. 그래서 그림을 본 사람들이 진정성을 더 크게 느끼지 않나 싶다. 때로는 주변에서 힘들어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 말보다는 그림으로 위로의 마음을 전하기도 한다. 조언이나 충고보다는 위로나 응원을 함께하고 싶은 마음을 담는다.”

-요즘 주로 그리는 그림은?

“거의 자기 위로나 위안에 관한 이야기가 많다. 가끔 나를 다그치기도 하고. 이별이나 부모님에 대한 고마움에 대한 이야기도 글과 그림으로 자주 표현하는 편이다.”

김씨에게 고비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찾아왔다. 올해 초 팔꿈치 인대 파열로 그림 그리기가 힘들어진 것. 방문을 열 수 없을 정도로 통증이 심했다. 지난해 연말까지 무리하게 작업을 강행한 것이 원인이었다. 올해 들어 일감이 크게 줄어들면서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마저 가중됐다.

“(그림을) 더 그리고 싶은데 그럴 수 없으면 어떻게 하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무엇이 가능할까… 이런 저런 생각에 정말 힘들었다. 내 존재의 가치를 그림에서 찾았는데, 만약 그 가치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막막함이 많이 들었다. 이루어 낸 것이 많아질수록 도전해서 깨지는 게 생각보다 굉장히 힘들다. 다행히 팔 상태는 조금씩 나아진다.”  

작가에게 행운을 가져다 준 그림 Have spare time. (2014) / 너는 내게 봄이다. springrain (2016)



-그림은 본인에게 어떤 존재인가?


“지금 내가 이곳에 있어야 하는 존재 가치인 것 같다.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고, 표현하거나 표출할 수 있는 창구이기도 하다. 그림이 일이기도 하지만 좋다. 그림을 그리지 못한다면 인생이 행복하거나 풍요롭지 못할 것 같다.”

-앞으로 계획은?

“올해 아동 그림책을 만들어보고 싶었는데 못했다.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은 것 같다. 생각하는 것 자체가 아동의 시선에 맞춰져 있지 않다보니 글을 쓰기가 힘들다. 문체부터 다시 배워야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요즘 많이 든다. 또 작년에 제안 받았다가 무산됐던 일러스트 에세이도 언젠가 꼭 만들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하루 빨리 건강해졌으면 좋겠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앞으로 계속 그림과 글 작업을 해가고 싶다.”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 김은애(작가명 그림은) 작가는?

-출생 : 울산
-학력 : 부산 장안제일고, 동명정보대 패션디자인학과 졸업
-경력 : 제품, 잡지광고, 네이버 '쉼' 및 단행본 일러스트, 핸드폰 테마 및 아이콘 제작자. 국악누리 표지 그림 공모 당선, 네이버 도전포스트 ‘설레는 신인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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