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의 탄핵]朴대통령 직무정지 경제원로-전문가 10人제언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9일 전직 고위 관료들과 경제 전문가들은 정부 경제팀의 흔들림 없는 자세를 주문했다. 일관된 메시지를 보내 해외 투자자와 경제 주체들의 심리를 안정시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경제 전문가들은 현재 상황을 1997년 외환위기에 버금가는 위기로 인식하고 위기 대응 체계를 가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과거에 비해 정부가 시장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기 어렵고 정국 혼란에 따른 변수가 큰 점을 감안해 ‘민(民)-정(政)-관(官)’이 힘을 모을 수 있는 한시적 위기 대응 협의체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은 “경제 컨트롤타워를 바로 세우는 게 시급한 만큼 여야 합의로 이 문제부터 빨리 풀어야 한다”고 밝혔다. 유 부총리가 자리를 지키든 임 후보자가 새로 들어서든 결론을 내고 힘을 확실하게 실어줘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강 전 장관은 “대통령 권한대행이 ‘바꿀 사람 있으면 교체하라’고 경제부총리에게 권한을 줘야 한다. 리더십을 확고히 해 경제 각료회의를 중심으로 현재의 난국을 돌파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 컨트롤타워가 중심이 돼 민간과 정치권이 참여하는 민관 협의체를 구성할 필요가 있다는 아이디어도 나왔다.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전 산업자원부 장관)은 “부총리, 경제부처 장관, 민간 전문가, 여야 정치권이 모두 참여하는 비상경제 대책기구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대책기구를 통해 국가 경제의 비상시국이라는 것을 국민들에게 알리고 ‘경제 우선(이코노미 퍼스트)’ 정책을 확실하게 각인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위기를 헤쳐 갈 경제팀을 중심으로 해외 투자자들의 불안감을 불식시키기 위해 단호하고 일관된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는 데에도 이견이 없었다. 탄핵 정국과 상관없이 시장경제 체제를 바탕으로 한 정부의 거시경제 정책에 흔들림이 없다는 점을 명확하게 알려야 한다는 지적이다.
윤대희 가천대 석좌교수(전 국무조정실장)는 “정부는 1979년 10·26사태 당시에도 외국 투자자들과 소통하고 불안을 잠재웠던 경험이 있다”며 “정부가 명확한 메시지를 신속하게 전달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재완 전 기재부 장관도 “탄핵심판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정부 정책기조가 일관되게 유지된다는 걸 확실하게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최중경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전 지식경제부 장관)은 “소비를 늘리기 위해 개별소비세를 인하한다든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청탁금지법)에 대해 예외 범위를 한시적으로 넓히는 등의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이 한국에 주문하고 있는 적극적인 재정·통화정책의 중요성도 거론됐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40.1%(올해 말 기준)로 주요 선진국보다 재정 건전성이 튼튼하기 때문에 추가경정예산 편성 등을 위한 여력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김준경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은 “한국 경제의 가장 시급한 과제인 구조조정을 위해서도 충분한 재원이 필요하다. (권한대행 체제라고 해도) 2월 임시국회를 열어 추경 논의를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문제는 위기 대응 체계를 가동하고 정책을 추진할 관료의 사기가 땅에 떨어졌다는 점이다. 전직 경제수석과 현직 기재부 차관이 최순실 사태에 연루돼 기소되거나 검찰 수사를 받았다. 면세점 관련 정책으로 검찰 압수수색까지 당한 기재부는 내년도 예산안 및 세법개정안 처리에만 전념하며 바짝 엎드린 ‘로 키(low key·조심스러운 태도)’ 행보로 일관하고 있다.
정덕구 이사장은 “관료들이 심기일전해 정치 실패의 공백을 메워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