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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이 깨뜨린 민주주의에 소망의 탑 쌓아… 국민이 이겼다

입력 | 2016-12-10 03:00:00

[촛불의 탄핵]朴대통령 직무정지
김병익 문학과지성사 상임고문이 본 탄핵




 

표정 감춘 감표위원들의 면모를 초조하게 바라보았다. 마침내 결과보고서가 의장에게 넘어갔다. 의장이 드디어 발표한다. “총 투표수 299명. 찬성 234표, 반대 56표….”

 마침내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재적의원 3분의 2를 훌쩍 넘어 가결됐다. 내 예상을 넘었고 내 기대를 채우는 표차로 대통령의 권한은 정지됐다. 하지만 그 결과를 보는 마음은 당초의 심정과 달리 차라리 쓸쓸했다. 나는 탄핵을 지지했으며 또 그러리라고 기대했지만, 우리 대통령에 대한 탄핵의 민의는 내 짐작보다 훨씬 강했다. 어쩌다 우리는 이런 정치적 후진에 처하게 되었는지, 우리 국가원수는 어쩌다 국회와 국민으로부터 이처럼 참혹한 불신의 대상이 되었는지.

 그러나 나는 박 대통령에 대한 동정은 조금치도 없다. 그는 정확하게 말하면 ‘고장 난 지도자’였고 ‘부재하는 통치자’였다. 그는 국가의 최고 권력을 사유화(私有化)함으로써 시스템을 망가뜨린 지도자였고, 세월호 사태에서처럼 스스로를 은폐시킴으로써 지키고 살려내야 할 국민에게 아무런 책임감을 갖지 않은 무력한 지도자였다. 그는 비서실과 내각을 가지고도 그 공적 자원을 활용하지 않고 최순실 개인에게 의존하고 나라의 예산과 조직을 수렴비선(垂簾秘線)으로 넘기고 최고 공직자로서의 공공적 지도력을 포기했다. 그는 국가원수로서의 위치를 자부하지 못했고 그 자리의 힘을 사물화(私物化)함으로써 대통령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했다.

 대통령에 대한 국민적 불신은 촛불시위와 여론의 압도적인 비판을 통해 더욱 격앙됐다. 국가 통치와 더불어 자신의 행동을 선택해야 할 지존의 자리에 있는 그는 형식적인 사과 끝에 그 결정권을 국회에 위임했고 마침내 헌법재판소에 위탁함으로써 자신의 공적 권력을 허상으로 만들었다. 그것은 통수권자의 결정권 부재(不在)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지도력 상실, 의무의 포기, 그리고 마침내 대통령이란 존재감의 상실을 확인시켜주며 그를 탄핵한 우리 시민들의 고양된 민주 의식에 감격하고 감사한다. 우리 시민은 주말마다 광장에 모여 무력감만 주는 대통령에게 퇴진을, 하야를, 마침내 탄핵을 요구했다. 그들은 4·19 때처럼 돌멩이를 던지지 않았고, 6월 민주항쟁 때처럼 화염병을 투척하지 않았고 대신 아름다운 촛불을 켜고 시위를 했다.

 그들은 또 외쳤고 행진하며 촛불로써 희망을 피워 올렸다. 그리고 ‘대통령이 무너뜨린 국격, 국민이 쌓아올렸다’(동아일보 11월 28일자 A1면 제목)는 내가 본 가장 아름다운 말처럼 우리 권력층이 허망하게 깨뜨려버린 우리 민주주의의 역사에 새로운 소망의 탑을 쌓았다. 한강의 기적이란 경제적 자부심, 한류라는 문화적 활기 위에 우리는 촛불로 꽃그림을 그려 민주주의의 실현이라는 또 하나의 성취를 이룩한 것이다.

 12·9 탄핵은 앞으로 우리에게 더 많은 문제를 제기할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결단은 어떻게 내려질지, 이에 따른 정치적 공백을 어떻게 채우고 경제적 무기력을 어디서 되찾을지, 실제적이고 혹은 절차적인 숱한 문제들, 연쇄적으로 난감한 사태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걱정하지 않는다. 전쟁도 겪었고 쿠데타를 만나고 유신으로 신음하며 국정 최고책임자의 시해(弑害)도 보았고 외환위기로 경제적 파국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 국민은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6월 민주항쟁으로 그 고통을 모두 이겨냈고 그 갖가지 어지러움을 풀어냈다. 그럴 수 있다는 자신감과 기대감이, 역사의 현장을 민주국민의 축제로 여겨 뛰어드는 가족들의 모습에서, 경찰 버스에 꽃 스티커를 붙이는 청소년들과 시위 후 청소하는 젊은이들의 감동적인 그림에서, 다시 깨우쳤다. 여기서 보다 아름다운 시민상이 꽃피리라는 희망을 껴안을 수 있었다. 과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었다.

 나는 무력했던 국회가 사심 없는 지도자들의 모임을 통해 우리 정치사회를 복원하고 무능한 권력을 대행할 대의의 정신을 발휘하며 정치적 행정적 공백, 경제적 외교적 함정 속에 빠지지 않을 지혜를 찾아내기를 바란다. ‘헬조선’을 씻고 ‘5포’의 절망을 이겨 화해와 평등의 자유민주주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키도록 합심해야 한다.

 오늘의 탄핵을 우리 역사의 역동적인 탄력의 힘으로 변혁시키고 무능한 통치권의 개편을 통해 우리 정치사의 새로운 의식이 현실화되기를 바란다. 지난 두 달 동안 보고 함께하며 소리친 함성들이 무력한 우리 정치를 향한 아우성임을, 탄핵을 의결한 국회의원들을 향한 것임을 그들 스스로 먼저 인식해야 한다.

  ‘사람이 곧 하늘’인 국민들은 눈을 똑바로 뜨고, 또 다른 박근혜 대통령이 나오지 않도록 삼엄한 감시를 계속할 것이다. 1960년, 1987년, 그리고 2016년, 새 세대 출현 때마다 드러낸 새로운 한국의 젊은 민주주의 의식이 지금 피어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아마도 내 생애의 마지막일, 그 꽃피는 한겨울의 민주주의 대한민국에 축하를 드리고 있는 것이다.

김병익 문학과지성사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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