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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흥의 한반도 In & Out]박정희 시대의 종언

입력 | 2016-12-10 03:00:00


한기흥 논설위원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소추안의 국회 통과로 정치 인생의 벼랑 끝에 섰다. 그의 몰락은 박정희 시대의 실질적 종언이라는 역사적 함의를 지닌다. 개발독재가 정당화됐던 1960, 70년대의 국정운영 패러다임을 유통기한을 넘겨 21세기에 운용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민주화가 진전됐지만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은 아버지 시대에 갇혀 있었다. 임계치에 이른 그 한계가 이번에 폭발적으로 드러났다.

박정희, 이젠 역사에 묻자

 박정희 정권이 10·26사태로 무너졌듯이 박근혜 정권도 최순실 게이트라는 헌정사의 사변으로 중도에 막 내릴 공산이 커진 것은 기구한 숙명이다. 아버지와 딸이 모두 민주주의의 가치를 훼손했으니 자업자득이나 국민에게 남긴 충격과 상처가 깊다. 박정희는 그나마 산업화를 일궜지만 박 대통령은 이렇다 할 치적도 없이 허망하게 물러나게 생겼다. 국정 역사 교과서에 아버지의 업적을 돋보이게 담아 헌상하고자 하는 딸의 효심을 역사학계와 교육계는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박 대통령이 자유와 인권을 억압했던 아버지를 넘어서려는 노력을 안 한 것은 아니다. ‘국민과의 약속’을 입버릇처럼 강조했다. 하지만 초헌법적인 통치행태, 관료와 기업이 무조건 ‘윗분’ 뜻을 받들어야 하는 절대적인 권력 집중, 정경유착과 음습한 ‘내부자 거래’는 바뀐 게 없다. 물려받지 말았어야 할 유산이다. 아버지가 핵심 측근의 총탄에 쓰러진 뒤 박 대통령은 ‘배신의 정치’에 치를 떨었지만 그 역시 비선 실세의 호가호위(狐假虎威)가 탈이 나면서 임기를 채우기 어렵게 됐다. 동생 근령, 지만 씨가 뒤늦게 정치에 뛰어들어 ‘가문의 명예’를 회복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다시는 어느 누구도 박정희 향수를 자극해 유권자의 선택을 받기 어려울 것이다.

 이젠 국민의 애증이 교차하는 박정희의 그늘에서 벗어나 새로운 공화국을 진지하게 고민할 때가 됐다. 박 대통령과 그를 ‘바지 사장’으로 내세워 나라를 말아먹은 최순실 패거리에게 법적 책임을 묻지 않고는 국민이 ‘이게 나라 맞다’는 위안을 결코 얻을 수 없다. 하지만 실패로 판명된 구시대의 시스템과 관행을 그냥 둔다면 박 대통령이 물러난다고 더 나은 세상이 절로 오진 않는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누구를 차기 대통령으로 뽑고, 국가의 새 패러다임을 어떻게 세울 것인지에 달렸다. 야권은 다음 정권은 이미 먹었다는 듯 김칫국부터 마시고 있고, 여권은 어떻게든 기사회생해 보려 몸부림친다. 누가 되든 여야 대선주자들의 역량과 자질은 물론이고 이젠 사생활까지 깐깐하게 검증하는 것이 불가피해졌다. 박 대통령에게 들이댄 잣대를 통과하지 못한다면 더 나은 대안이라고 할 수도 없다. 박 대통령에게 매섭게 돌을 던졌다고 국정을 더 잘 이끌 거란 보장도 없다. 박정희 이후 그를 능가하는 리더십을 제시하지 못한 보수는 이젠 경제와 안보를 내세운 ‘한강의 기적’ 우려먹기를 그만두고 혁명적 변신을 꾀해야 한다. 젊은 유권자들은 박정희를 잘 알지도 못한다.

국민에게 달린 새 패러다임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이 확인된 헌법을 미래지향적으로 고쳐 더 이상 특권과 반칙이 통하지 않게 국가를 정비하는 것이 시급하다. 대한민국의 산업화와 민주화는 세계에 내세울 만큼 완성된 것이 아니었다. 새로운 성공 스토리를 열어가는 것은 결국 국민의 몫이다.

한기흥 논설위원 eligi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