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조선족이다/신혜란 지음/336쪽·1만8000원·이매진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의 중국동포거리. 영국 런던의 조선족은 한인타운 곳곳에 스며들어 살지만 서울에서는 일부 지역에 함께 모여 산다. 동아일보DB
황해뿐일까. 책은 지구를 반 바퀴 돌아 영국의 한인 식당에서 일하고 한국인의 집에서 가사노동을 하는 조선족에 주목한다. 저자가 2010∼2014년에 걸쳐 영국, 중국 칭다오, 서울 구로동 등지에서 조선족을 인터뷰해 그린 ‘조선족 디아스포라(이산)’의 세밀화다.
2014년 기준 영국 런던 남서부의 뉴몰덴에는 한인들이 4000명 정도 사는데, 조선족도 그 정도 된다. 조선족이 없으면 뉴몰덴의 한인 식당들은 운영이 안 될 정도다. 브로커를 통해 비합법적으로 입국한 조선족이 상당수인데, 그 과정도 만만치 않다. 4개국 정도를 거치는 건 보통이고 20개국을 경유하는 이도 있다. 중간에 단속에 걸리는 통에 입국에 6개월∼1년 이상 걸리기도 한다.
영국의 조선족들은 한결같이 ‘성질 급하고 까다롭고 손이 빠른’ 한국인 고용주들에게 일을 배우며 힘들었던 경험을 털어놨다. 그래도 한국에서 일하는 것보다 나은 편이다. 영국의 한국인은 먼저 이주한 선배일 뿐 조선족과 마찬가지로 영국 사회의 이방인이기 때문이다.
서울의 조선족들은 어떨까. “우리는 중국 신분증에도 한글로 이름을 적는데 한국에서는 신분증에 영어로 쓰게 돼 있어요. 조선족은 ‘다문화’인가요, 한국 사람인가요?” 조선족은 중국에서도 받지 않던 차별을 같은 민족이 사는 한국에서 받는 설움을 토로했다.
중국 칭다오의 조선족은 사뭇 다르다. 조선족이 한국인보다 먼저 중국에 온 이민자이고, 중국 시민이기 때문이다. 한국인 고용주는 중간관리자로 일하는 조선족에게 많이 의지하게 된다. 칭다오의 한 조선족은 “한국인은 왜 내 나라인 중국에 와서도 조선족을 차별하려 드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중국 경제의 급성장은 돈 벌러 해외에 나온 조선족에 문제를 야기했다. 영국의 한 조선족은 “15년 전 1파운드는 중국 돈으로 15위안이 넘었는데, 요즘은 10위안도 안 된다”고 말한다. 예전에는 중국에서 집 한 채를 살 만한 돈을 모았지만 이제는 별로 큰 금액이 아니게 됐다. 귀국의 종착점이 멀어진 것이다.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인 저자는 “세계화로 지리적 뿌리내림이 흔들리면서 부유하는 개인은 공허함을 느낀다”며 “불안 속에서 더 나은 직장을 찾아 이동한다는 점에서는 우리 모두가 조선족”이라고 말했다.
조종엽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