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의 유력 대선주자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어제 “박근혜표 정책의 집행을 당장 중단하는 것”을 시작으로 ‘국가 대청소’를 통해 촛불혁명을 완성하자고 주장했다. 여기엔 비리와 부패에 관련된 공범자 청산을 위해 그들이 축재한 부정한 재산을 몰수하고 지위를 박탈하는 것 등 6대 과제가 들어 있다. 초법적인 비상대권이라도 부여받은 듯하다.
야당은 박 대통령 탄핵소추의 여세를 몰아 그들이 실정(失政)이라고 보는 정책들에 대해 메스를 들이댈 기세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한일 위안부 합의, 한일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 등 국익과 직결된 외교안보 분야의 정책들도 망라돼 있다. 정권이 바뀐 것도 아닌데 야당이 점령군처럼 굴며 ‘박근혜 정책’들을 무력화할 경우 정부의 안정성과 연속성이 훼손되고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신뢰도도 추락할 것이다.
야당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이끄는 정부에 ‘여야정협의체’나 ‘국회·정부협의체’를 구성해 국정을 함께 논의할 것을 제안했다. 명분은 국가 비상시기에 절실히 요구되는 ‘협치’를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거야(巨野)가 일방적으로 정책 의견을 제시하고 관철하려는 의도가 아닌지 의심스럽다.
야당이 사드와 한일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을 뒤집는다면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처하는 시스템에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된다. 사드는 한미동맹 차원의 결정이라 백지화할 경우 동맹관계에 금이 갈 수도 있다. 미 백악관이 어제 황 권한대행 측에 “미국은 한국의 변함없는 동맹이자 우방이고 동반자”라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도 그런 우려를 담고 있다고 봐야 한다. 일본이 군사정보협정의 재검토나 위안부 합의 재협상은 없다고 선을 긋는 것도 탄핵 정국이 외교에 미칠 파장을 경계하기 때문이다. 국가 간 합의가 국내 정치 때문에 번복된다면 “이게 나라냐”는 얘기가 국제무대에서도 나올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이 처한 안보 경제 상황은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으로 고건 국무총리가 권한대행을 할 때보다 훨씬 위중하다. 황 권한대행은 국회와 소통을 강화할 필요가 있지만 촛불 민심을 자의적으로 끌어대는 야권의 부당한 압력에 휘둘려선 안 된다. 민심은 박 대통령을 심판했을 뿐 야당에 국정을 위임한 것은 결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