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가결 이후/원로에게 길을 묻다]야권을 향한 제언
○ “황교안 체제와 야당은 공동운명체”
▽김형오=황교안 권한대행 체제는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허약한 정부가 될 가능성이 크다. 황 권한대행 자신이 임명권자(박근혜 대통령)에 의해 바뀔 뻔했다. 총리 다음 대통령 권한대행 승계자인 경제부총리도 바뀔 위기다. 법무부 장관은 공석 상태다. 더욱이 2004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 가결 때와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당시엔 노 대통령 개인 문제(공직선거법 위반)였지만 이번에는 국가 권력을 사유화한 국정 농단 사태라 총리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핸디캡(약점)투성이 정부인 셈이다.
▽김형오=하지만 야당은 황교안 체제를 계속 흔들 거다. 흔들려고 (황교안 체제를) 유지시킨 것 아니겠느냐. 여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황교안 체제를 유지시킨 건 박 대통령이 아니라 거국내각 구성을 거부한 야당이라는 점이다. 야당을 향해 ‘너희가 세워놓고 너희가 흔드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압박해야 한다. 황교안 체제와 야당은 대결선상에 있는 게 아니라 공동운명체라는 점을 꼭 강조하고 싶다.
▽김황식=김형오 전 의장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런 관점에서 야당이 제안한 여야정 협의체가 정치적 수사(修辭)에 그쳐선 안 된다.
▽김진현=우리나라의 혼란이 가중되면 가장 기뻐하는 사람이 누구겠나. 김정은이겠지. 그 다음이 시진핑(習近平)이고 세 번째가 아베 신조(安倍晋三) 아닌가. 이런 각도에서 어떻게 이 사람들을 기쁘지 않게 할 것인지, 우리나라 지도자들이 구체적인 대안을 생각해야 한다. 이번 기회에 정치개혁까지 해야 한다.
▽허영=야당이 여야정 협의체를 제안했지만 속내는 다를 거다. (야권은) 황 권한대행의 국정 운영에 사사건건 반대해 결과적으로 정국 혼란을 계속 끌고 가고 싶을 거다. 그래서 최종 책임을 박 대통령에게 돌려 차기 대선을 유리한 국면으로 만드는 게 야권의 진심이 아니겠느냐. 하지만 야당 지도자들이 잘 판단해야 한다. 지금은 야당이 국정을 충분히 잘 끌고 갈 수 있다는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 국민도 앞으로 야당에 나라를 맡길 수 있는지 지켜보고 있다.
▽김진현=어차피 국정 운영의 비상기구가 필요한 만큼 황 권한대행과 여야 정당이 추천하는 대표들로 ‘비상국정회의’ 같은 협의체를 만들어야 한다. 이곳에 국가 현안을 논의하고 결정할 수 있는 전권을 줘야 한다. 각 정당 대표들은 정당의 이익이 아닌 오로지 국가 이익만을 고민해야 한다. 이게 실패하면 결국 파국으로 가는 거다. 비상기구의 성공 여부가 현 난국을 슬기롭게 헤쳐 나갈 수 있느냐의 리트머스시험지다. 이를 위해 여야가 신사협정을 맺어야 한다.
▽김황식=김진현 이사장 말씀에 충분히 수긍이 가지만 법적 틀에서 만든 회의체가 아니니 전권을 부여하긴 힘들 수도 있을 것 같다. 다만 그동안 (여야 정치권이) 강조해온 협치를 실제로 실험하면서 이번 기회에 하나의 ‘협치 모델’을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다.
▽허영=결국 (야권이) 황교안 체제를 인정하고 황 권한대행이 국정을 안정적으로 이끌 수 있도록 협조하는 것 말고는 다른 대안이 있을 것 같지 않다.
▽김형오=야당이 황교안 체제에 협력하려면 황 권한대행도 중요한 안건일수록 국회와 긴밀히 협조해야 한다. 안보 분야의 국가 기밀사항도 보안 약속을 확실히 받아 놓고 야당 지도부와 공유할 필요가 있다. 또 황교안 체제가 과도내각이라는 점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국론을 분열시킬 수 있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장기적 현안만 챙겨야 한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처럼 서로 입장이 첨예하게 갈리는 문제는 차기 정부에 맡겨야 한다. 교과서 국정화를 미룬다고 나라가 죽고 사는 게 아니지 않나. 그래야만 야당의 협조를 얻을 수 있다.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