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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길속 생명 구한 알바생, 편의점 사장으로

입력 | 2016-12-12 03:00:00

22세 이재천씨, 화재車 운전자 구해… 선행 알게된 회사서 점주되게 도와
“홀로된 엄마 웃음 되찾아 행복”




22세 청년 이재천 씨(오른쪽)가 어머니와 함께 자신이 경영하는 편의점 앞에서 하트를 그려 보이고 있다. GS25 제공

 이제 스물두 살 청년인 이재천 씨는 한 달여 전 GS25 연수골드점(인천 연수구 함박로)의 경영주가 됐다. 친구들은 아직 학생이거나 아르바이트생이 대부분인 나이. 친구들은 그를 두고 “벌써 사장이 됐다”며 부러워하고 있다. 이 씨 역시 불과 반년 전까지만 해도 ‘편의점 알바생’이었다. 몇 개월 사이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인천의 한 GS25 편의점에서 오후 10시부터 이튿날 오전 8시까지 일하는 고된 생활을 이어가던 5월. 이른 새벽 편의점 앞 승용차에서 연기가 나는 것을 본 이 씨는 앞뒤 재지 않고 곧바로 달려 나갔다. 승용차 안에는 40대 남성 운전자가 쓰러져 있었다. 폭발음과 함께 운전대 앞까지 불이 옮겨붙는 아찔한 상황 속에서 이 씨는 조수석 창문을 깨고 운전자를 구출했다.

 당시 모습을 담은 영상이 한 방송사 뉴스에 보도됐다. 이 씨는 인천시 등 곳곳에서 표창을 받았다. 이 소식이 GS25 본사에 전해졌다. GS25는 이 씨에게 포상금 100만 원을 지급한 뒤 편의점을 경영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그러고는 그가 가맹비와 보증금 없이 편의점을 운영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가 운전석에 쓰러진 남자를 본 순간 떠올린 것은 그가 중학교 3학년 때 세상을 떠난 아버지였다.

 “저 남자가 죽으면 남겨진 가족들은…. 망설일 시간이 없었죠.”

 그의 아버지는 급성백혈병으로 숨졌다. 발병 후 숨을 거두기까지 한 달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와 어머니 김현숙 씨(49)의 삶은 크게 흔들렸다. 어머니는 아들의 고교 시절 내내 거의 매일 술로 슬픔을 달랬다. 피눈물을 토해냈고 웃음은 잃었다. 그런 어머니를 보며 이 씨가 느낀 감정은 놀랍게도 ‘미안함’이다.

 “엄마를 원망한 적 없어요. 오히려 나 때문에 더 힘들 것 같아 미안했어요.”

 그때부터 그의 목표는 “엄마를 웃게 하는 것”이 됐다. 전단 돌리기, 식당 서빙 등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렇게 번 돈으로 그는 어머니가 좋아하는 회를 샀다. 그가 회를 사올 때면 어머니는 술을 먹지 않고 회만 먹었다. 그게 좋았다.

 이 씨는 해양과학고에 진학한 후 항해사를 꿈꿨지만 엄마를 두고 집을 비울 수 없단 생각에 포기했다. 그리고 고교 때처럼 여러 아르바이트를 하며 엄마를 지켰다. 그러던 중 기회가 행운처럼 찾아왔다.

 주위에서는 효심이 지극해 복 받은 것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그는 손사래를 친다. 그가 겪은 불행이 그의 잘못 때문이 아니듯 그에게 온 행운도 그가 잘해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도움 준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요즘 참 웃기 힘든 시절이지만 그래도 다들 웃었으면 좋겠어요. 불행하다 생각하면 더 불행해지니까요. 저희 엄마도 요즘 다시 웃어요. 그게 너무 행복해요.”
 
인천=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