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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덕 칼럼]문재인이 ‘촛불혁명’을 망치고 있다

입력 | 2016-12-12 03:00:00

“촛불민심이 요구한 청산 위해 시민단체 참여시켜 입법 추진”
인민의회 같은 反헌법적 제안
촛불시위 참여했다고 대권이 절로 굴러올 것 같은가
‘모든 문제 청산’과 法治능멸… 혁명의 성공 막는 요인이다





김순덕 논설실장

 대통령 탄핵소추안의 국회 통과 이틀 전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야당으로서 촛불시위에 같이 참여해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했으니 자연적으로 (대권이) 나에게 올 것이라는 환상은 버려야 한다”는 거다. 다분히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를 겨냥한 언급이었다.

 이 중요한 얘기를 아무도 전해주지 않았는지 문재인은 어제 현 시국에 대한 성명서를 발표했다. 국민은 대통령 한 사람이 아니라 정권을 탄핵했다며 “촛불민심이 요구하는 청산과 개혁을 위한 입법과제를 선정하고 추진할 사회개혁기구 구성을 제안한다”는 점령군 대장 같은 발언을 한 것이다.

 잘못된 적폐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데 반대할 사람은 단언컨대, 없다. 그러나 새로운 대한민국 건설을 위한 6대 과제라며 비리와 부패에 관련된 공범자들을 ‘청산’하는 것부터 국정 농단을 앞장서서 비호한 권력기관의 공범들을 ‘색출’하고 책임자들을 ‘처벌’해야 한다는 표현을 보면 선혈이 낭자한다. 국회는 불과 사흘 전에 헌법 절차에 따라 대통령을 탄핵했고,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누구 마음대로, 어떤 시민사회를 무슨 자격으로 입법에 참여시켜서 부역자를 색출, 청산, 몰수, 박탈, 개조하는 인민재판이라도 하겠단 말인가.

 문재인이 헛물켜지 말라는 예로 김종인은 1969년 프랑스 사례를 들었다. ‘68혁명’의 광풍이 휩쓴 다음 해 드골 대통령은 자신의 신임을 연계한 국민투표가 부결되자 사임했다. 두 달 만에 치른 대선에서 당연히 야당에 정권이 넘어갈 줄 알았는데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다는 것이다. 드골 정부에서 총리를 6년이나 한 조르주 퐁피두 우파 대통령의 당선이었다. 이 나라엔 결선 투표가 있고, 1차 투표에서 좌파 후보가 셋이나 나오는 바람에 결선도 오르지 못했지만 국민은 지긋지긋한 혼란보다 안정을 택한다는 교훈은 지금도 유효하다.

 오래된 과거까지 갈 것도 없다. 혁명이 민주화로 성공적 정착을 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점은 ‘국가 대청소’ 같은 총체적 해결의 과욕을 접는 것이라고 작년 말 미국의 포린어페어스지(誌)가 강조했다. 스페인, 칠레, 남아프리카공화국, 폴란드 등 민주화에 성공한 국가의 전직 수장 12명에게 물어 얻어낸 결론이다.

 1987년 6월 항쟁으로 우리는 민주화에 성공한 국민이라고 믿고 싶으면서도 굳이 다시 들춰본 이유는 박근혜의 탄핵과 함께 드러난 문재인 같은 야당 대선 주자의 시대적, 정신적 지체(遲滯) 때문이다. 점진적인 발전을 위해선 누구와도 타협해야 하는 것이 정치인의 용기다. 정권을 맡기면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는 가능성을 보여줘야 수권능력이 있는 것이지 “구제도와 구악을 청산하고 낡은 관행을 버려야 한다” 같은 말은 아무나 할 수 있다.

 이보다 더 심각한 문재인의 문제는 법치(法治)에 대한 능멸이다. 탄핵 전에는 헌법에도 없는 거국내각, 대통령의 전권 포기를 주장하더니 탄핵 후엔 대통령 사퇴를 거듭 촉구하고 있다. 포린폴리시지(誌)는 색깔혁명의 실패 이유를 ‘법치 부재’ 때문이라고 간단히 정리했다. 정권을 접수한 새 정부들이 과거를 단죄하고 개혁한다며 법적 기준 같은 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집권층 마음대로 한 나라에서 어김없이 역풍이 덮쳐와 어렵게 성취한 민주화 혁명을 도루묵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김종인은 “문 전 대표가 좌파로 당을 구성해 대통령 후보 지명 자체는 별로 염려 안 할 것”이라고 했다. 문제는 이런 문재인으로 집권이 가능하겠느냐는 점이다. 혁명에 성공한 대중도 여망을 제도로 만들 순 없다. 그래서 리더십이 필요한 것이고, 리더의 비전이 뭔지는 더 중요하다. 그런데 문재인은 지난 2일 국회 앞 집회에서 탄핵 이후 가장 중요한 이슈가 뭔지를 묻는 19세 학생의 질문에 “국정 공백 최소화를 위해 빠른 대선이 필요하다. 어느 당 어느 후보가 대한민국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 나갈 비전을 준비하고 있는지 제대로 판단해야 하는 것이 우리에게 남은 과제 아니겠나”라고 알아듣기 힘든 답변을 하고 말았다.

 나는 어떤 비전을 가지고 있다도 아니고, 어떤 나라를 만들겠다도 아니고, 하다못해 노무현의 못다 한 꿈을 이루겠다는 것도 아니다. 시민혁명을 실패로 돌아가게 만드는 요소를 완비하고 있으면서, 그저 빨리 대선을 치러 대통령 자리에 앉고 싶다는 사람이 제1야당의 가장 유력한 대선 주자라는 사실이 우리 시대의 비극이다.
 
김순덕 논설실장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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