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는 신뢰를 기반으로 한다. 신뢰하지 못하면 대중은 합리적인 경제적 위험조차 기피하기 마련이다. ―‘자본주의를 구하라’(로버트 라이시·김영사·2016년)
2016년 주식시장을 뜨겁게 달군 키워드 중 하나는 공매도다. 공매도는 주가 하락을 예상한 투자자가 없는 주식을 빌려 팔고, 값이 떨어진 주식을 사 되갚는 투자 기법이다. 올해 10월 한미약품의 늑장 공시 때 일부 투자자가 공시 전 미리 공매도 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 논란이 됐다. 이어 지난달에도 대우건설의 3분기(7∼9월) 실적 검토보고서를 회계법인이 ‘의견 거절’한 사실이 공시되기 직전 대규모 공매도 거래가 이뤄지면서 공매도는 또다시 구설에 올랐다.
이 같은 공매도에 개인 투자자들은 분노했다. 기관이나 외국인투자가는 공매도를 이용해 위험은 회피하면서 돈을 벌었지만 공매도를 이용하기에 한계가 있는 개인들은 피해를 뒤집어쓸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개인 투자자에게만 손해를 강요하는 공매도를 아예 없애라”는 항의성 댓글이 공매도 관련 기사마다 줄줄이 따라붙는 이유다.
개인 투자자들의 이 같은 반응에는 공매도가 개인 투자자에게 불리한 투자 방식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기관이나 외국인이 개인 투자자보다 내부의 미공개 정보에 접근하기 쉽다는 점도 공매도를 불신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공매도를 둘러싼 논쟁은 어쩌면 신뢰가 무너진 현재 한국 사회의 단면일 수도 있다. 저자는 책에서 ‘(자본주의의 신뢰가 무너지면) 자잘하게 속이는 행위는 당연히 눈감거나 시장을 불쾌한 냉소주의로 뒤덮이게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를 바로잡기 위해 현재 소수에게 유리한 자본시장 제도들을 다수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매도 관련 논쟁이 계속되고 있는 이때에 공매도라는 투자 제도가 특정 세력에 유리하게 설계된 것은 아닌지 꼼꼼히 되짚어 봐야 할 시점이다.
이건혁 기자 gun@donga.com